민주주의 발상의 첫 출발은 세금이다. '세금 있는 곳에 대표 있다'가 대의제도(代議制度)의 캐치 프레이즈다. 정부가 국민의 혈세(血稅)를 어떻게 쓰고 있느냐만큼 국가 경영에서 중요한 것이 없다. 정부는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지 못한다.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은 오직 국민이다. 국민이 피와 땀을 흘리며 부가가치를 일구어 낸다. 그 피와 땀으로 일구어 낸 부가가치를 정부가 꼭 쓸 곳에 쓰고 있느냐를 감시하도록 국민은 그들의 권리를 위임한 대표자를 내보낸다.
그런데 그 대표자가 한 푼의 세금도 내 본적이 없는 대표자라면 대표자로서 자격을 지닐 수 있겠는가. 세금을 전혀 내 본 적이 없는 대표자가 세금을 정부가 어떻게 쓰고 있는지 어떻게 감시할 수 있겠는가.
아마 이 이야기를 유엔에 속해 있는 어느 한 나라 사람이 듣는다면 현재 한국의 국민 소득이 얼마인가를 먼저 물을 것이다. 1960년대초 1인당 GNP가 80달러에 불과했을 때 미상불 그런 대표자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한 때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룸펜들이 한다는 말도 있었다. 물론 1950년대에서 60년대초에 이르던 시절이다.
너무 가난하다보니 무납세자(無納稅者)가 부지기수였고, 그 무납세자 중의 한사람이 이 참에 국회의원이나 해보자 해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된 사람 또한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국회의원은 모두 거지나 실업자가 한다는 말이 나옴직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때 그 시절의 이야기다. 봄이 오면 전 국민의 반이 밥을 굶어야 했던 춘궁기가 있던 시대의 이야기다. 그 시대의 이야기가 40년이나 지나고 1인당 GNP가 1만달러에 이르는 지금 나온다면, 이는 분명 우리 정치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리다. 새 천년의 첫 국회의원 출마자 다수가 타임캡슐을 타고 거꾸로 날아가고 있다는 소리다.
16대 국회의원에 출마한 의원 후보자 가운데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후보가 27%나 된다고 한다. 거기에 연간 100만원 이하의 세금만 낸 사람도 46%에 이른다고 한다. 연간 100만원 이하의 세금은 생활보호대상자 수준을 간신히 넘기는 사람들이 내는 세금이다. 그렇다면 의원 후보자의 3분의 2가 훨씬 넘는 73%가 실업자나 거지, 아니면 겨우 끼니를 이어가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사장이나 이사장을 지냈다는 후보 중에는 종합소득세를 한 푼도 안 냈다는 후보가 수두룩하다. 분명히 그들의 지위로 보아 금융소득이나 부동산 임대소득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한 푼의 종소세(綜所稅)를 안 냈다면 그들은 확실히 탈세자 아니면 과납세자(寡納稅者)다. 이 또한 세금 내지 않은 사람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문제가 된다. 심지어는 현직 국회의원도 평범한 봉급생활자보다 훨씬 적은 세금을 내고 있다. 그렇다면 현직 국회의원도 이름만 국회의원이지 '납세'라는 기본의무의 수행에선 부끄럽기 한량없는 사람들이다.
세금은 국가에 단순히 조세(租稅)로 내는 돈만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 측면에서 세금은 그 사람의 능력이고 자격이고 그리고 인격이다. 세금을 많이 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세금을 적게 내거나 전혀 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무능력하다는 의미다.
사회적으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사회인으로 그만큼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그 사람은 어떤 자리에 앉든 그 자리가 요구하는 일을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이 남을 도와줄 수 있고 남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할 수 있다.
인격적 인간이며 도덕적 인격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에게 소득을 물으면 반드시 세금 떼기 전의 소득을 말한다. 그 세금을 포함한 종합 소득이 그 사람의 능력이며 자격이며 인격을 말하기 때문이다.
'세금 있는 곳에 대표 있다'는 대의제의 캐치 프레이즈 이전에 '세금 내는 곳에 그 사람의 능력과 자격과 인격이 있다'는 생각을 후보자들은 먼저 해야 한다.
연세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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