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지친 등교길

출근길에 등교하는 학생들을 많이 본다.버스서 내려 걸어가는 학생들이 인도에 가득하고 학교로 향하는 차도에는 학생을 태운 승용차가 줄을 잇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표정들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걸어서 등교하는 학생들은 서두는 걸음걸이만큼 일견 활발해 보이기도 하지만 승용차로 등교하는 모습은 착 가라앉은 정물화와 같다.

어머니와 자녀, 아버지와 자녀… 승용차 안은 편안하고 훈훈해 마땅하지만 그런 모습은 드물다. 운전하는 부모나 편하게 타고 가는 자녀나 하나같이 피곤한 표정에 말이 없다. 지칠대로 지친 심신으로 즐겁지 않은 길을 마지못해 가는 듯한 모습이다.

새벽 같은 아침에 매일 벌어지고 있는 고교생과 학부모들의 일상이다. 고3 가정만의 일이 아니다. 어릴때부터 공교육 사교육 가릴 것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학생들과 이들의 뒷바라지에 허덕이는 학부모들. 사회 펀드멘탈의 문제나 헌법상 행복추구권의 침해는 아닌가.

아이들은 푸른 꿈과 자유를 빼앗기고, 어른들은 제대로의 역할과 여유를 박탈 당한채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전에 내몰리고 있다.

이 지경이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엄청난 교육열이 첫번째 원인이다. 경제성장속도를 추월한 폭발적인 교육열에 정부의 조령모개식 안일한 대응이 교육의 파행을 몰고왔다.

못배운 한풀이에 '좋은 학교 가서 출세해서 잘살아라'라고 하는 소박한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개천에서 용 났다'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화시대로 접어들면서 개천의 용은 전설로 사라졌고 더욱 가열된 교육열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교육계에 악성 바이러스를 생성시켰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장시대의 졸부들과 탐관오리류의 학부모들은 치맛바람, 촌지청탁, 쪽집게과외를 창출하면서 고전적 교육열을 무색케하고, 대다수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고 등교길을 어둡게 만든 것이다. 이들 일부 계층들은 교육악을 만연케 한 상당 부분의 책임이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든 넘치는 교육열을 책임지고 감당해야할 당사자는 정부다. 교육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한 김대중 대통령의 교육 개혁은 어디쯤 가고 있는가.

지난날에도 1969년 중학교 무시험 입학, 74년 연합고사와 고교 평균화, 그리고 69년 현재의 수능으로 이어져 온 대입 예비고사 실시 등 당대의 교육제도 개혁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는 여기에 비견할 만한 개혁의지, 교육정상화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교원 정년 단축, 소규모학교 폐교가 대답은 아니다.

이 마당에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 위헌판결이 나왔다. 교육이든 과외든 국민의 기본권이니까 하고 싶은대로 해봐라? 하다보면 결판이 난다? 카오스를 부르는 듯한 심술같은 헌재의 이번 판결은 최소한 교육적인 것은 아니다.

덕분에 공교육 위기론이 다시 만발했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저께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스승의 날 기념식장에서 떠드는 학생을 체벌한 교사를 다른 학생이 112에 신고한 사건이 발생했다. 개탄스런 일이지만 역시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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