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사 뒷 이야기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킬 무렵에 브라질 정보국이 칠레 정보요원들에게 고문기술과 특수훈련을 전수했다고 브라질 최대 일간지 '오 글로보'가 최근 보도했다. 그 일은 '콘돌공작'이란 이름으로 행해졌다는 것.

'다국적 탄압정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콘돌'은 1970, 1980년대 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파라과이.볼리비아 등 남미 5개국을 휩쓸던 공산주의에 대처하는 수단으로 도입됐으나, 나중에는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야당.재야 인사를 납치.고문.살해하는 탄압도구로 이용됐다. 아르헨티나 경우, 1970년대 말 군부가 '더러운 전쟁'을 저지를 때 3만여명의 재야인사.대학생 등이 실종되거나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美, 비무장 이라크군 살상

1991년 걸프전 종전 무렵 배리 매카프리 장군(현 백악관 마약통제국장) 휘하 24사단이 필요 상황이 아닌데도 3회나 과도하게 군사력을 사용, 비무장 이라크군을 살상했다고 미국 잡지 '뉴요커' 최신호가 보도했다.

그해 2월27일 휴전일엔 비무장 상태로 억류된 382명의 이라크 병사들을 향해 발포했으며, 다음날엔 무기를 숨긴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라크인들을 향해 발포해 15∼20명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

매카프리 장군은 이 보도와 관련해 인터뷰를 거부한 뒤 변호사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내가 적의 공격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었더라면 그들은 그것을 비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르완다 학살 고아 70만명

르완다 학살이 있은 지 6년이 지났지만 비극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그로 인해 발생한 고아가 전체 인구의 18%인 7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 수용소에서 지내거나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가고 있다. 또 르완다 전체 어린이의 96%가 학살 장면을 목격했고 80%는 가족 중 최소 1명을 이때 잃어, 정신적 상처가 막대한 실정.

1994년 4월초 흉기를 든 후투족 과격파들은 르완다의 소수 부족인 투치족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했었다. 그후 100여일간 학살이 계속돼 모두 50만∼80만명의 투치족이 피살됐다. 하루 평균 5천명이 살해됐으며, 전체 국민의 10% 가량이 이 기간에 숨졌다. 르완다를 떠나 난민으로 전락한 사람도 200만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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