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이 갓 넘어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 행복에 겨웠으나 100일도 채 안돼 남편의 구타가 시작됐습니다. 병에 머리를 맞아 수술까지 하기도 했지만 남편의 구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크면 괜찮겠지, 세월이 흐르면 좀 나아지겠지 했지만 이젠 목숨의 위협마저 느껴져 더 못 살겠습니다…"
18년간 남편의 구타를 참다 못해 가정폭력상담소를 찾은 한 30대 주부의 하소연이다. 자기 주장이 강한 신세대 미시족이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남에게 말도 못하고 남편의 폭력에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대구 여성의 전화(053-475-8082~3) 경우, 상담자 절반 이상이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경험했을 정도로 가정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최은숙 사무국장은 "상담자 대부분이 30, 40대 주부이며, 그 중 절반 이상이 주 1~4회 남편에 의해 맞을 정도로 가정폭력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됐으나 가정폭력 상담건수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것.
여성단체 등의 노력으로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가정폭력은 여전히 가정내 문제로 소홀히 다뤄지기 일쑤. 매 맞는 여성들도 처음엔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잘못해서'라고 생각하며 남편의 구타를 고치려 하지만, 결국 10~20년씩 매를 맞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상담·보호기관을 찾고 있다.
그러나 대구시가 운영하는 일시보호소 '태평상담센터' 등을 제외하곤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이들 여성이 몸을 의탁할 곳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 이때문에 구타당하는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신체적·정신적 안정과 치료를 돕는 긴급피난 '쉼터'를 마련하자는 기금 모금 캠페인이 민간차원에서 확산되고 있다.
대구 여성의 전화가 추진하고 있는 '쉼터'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일시 보호, 무료 숙식을 제공하고 각종 상담프로그램을 통해 주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정과 용기를 심어줄 예정. 피해 여성에게 의료적·법적 지원도 제공하게 된다.
최 사무국장은 "철저히 비공개로 운영되고, 피해 여성이 긴급 상황에서 피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것"이라며 기금 마련 캠페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랐다.
金英修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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