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낙동강전선-다부동 전투 승리 이끈 백선엽장군

"1사단 최대의 전투는 다부동에서 시작되어 다부동에서 끝을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무아지경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전투를 지휘했을 뿐입니다"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선엽(白善燁·79·당시 1사단장·준장)장군

29세의 사단장으로 북진때 평양 첫 입성, 휴전회담 최초 한국대표, 33세의 나이로 한국군 최초의 육군대장 승진이 관록이 말해주듯 역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헤쳐나온 백전노장 답게 장군은 아직도 건강했다.

한국전쟁박물관내 6·25 50주년기념사업회 위원장실에서 만난 노장군은 '대구와의 인연'을 화제로 말문을 열었다. 대구를 지키기 위해 다부동 전투에 온몸을 던졌고, 육군 참모총장 시절 큰 아들을 얻은 곳 또한 대구였다는 것이다.

백 장군은 3개 사단 이상의 인민군 병력이 끝도없이 밀려드는 가운데 국군 1개 사단에 미군이 두겹으로 중첩 투입된 곳은 다부동전투가 유일했다며, 그만큼 대구의 관문 다부동 방어선 사수가 절박했다고 회고했다.

"김일성이 '대구 점령의 날'로 호령했던 8월15일이 '위기의 절정'이었어요. 사단의 모든 방어선 정면에서 백병전이 전개되면서 소총보다 수류탄을 주고받는 혈투가 20km의 전 전선에서 밤낮없이 계속됐으니까·…"

매일 주저앉아 울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병력 손실을 입었다는 장군. 대구등지의 청년·학도병들이 기초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채 전선에 나가 이슬처럼 산화해 갔다고 안타까워했다.

"살아남은 자의 훈장은 먼저 간 전우의 희생 앞에서는 빛을 잃지요. 다시는 이땅에서 6·25와 같은 민족의 비극이 재현되지 않길 바랍니다"

3년전부터 6·25 50주년기념사업을 위해 동분서주해 온 백 장군은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사람들의 명복을 거듭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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