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통일가치관' 혼란

대학가의 인공기, 일부의 북한 찬양, 안방까지 들어온 김정일의 육성. 그에 반해 엄존하는 북한찬양고무죄, 6.25를 겪은 세대들의 정서, 남북 정상의 55년만의 악수. 이 상반하는 두 분위기 사이에서 적지않은 사람들이 정서적 혼란과 충격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특히 40대 이상의 세대에서는 분단 사상 처음 대좌한 남북의 화해무드에 감격하면서도 '엄연한 군사적 대치'라는 현실에 비추어 '우리사회 일부에서 너무 앞서 나가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2일 오후부터 경북대 사범대 건물앞에 대거 내걸린 인공기는 검찰이 사법처리 방침을 밝힌 14일에도 여전히 나부끼고 있다. 우리측 방북 대표단이 탄 여객기의 태극 마크가 지워진 채 북측으로 들어간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며, 얼마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학생들은 "인공기는 국가보안법 위반 차원을 넘어서 남북간의 통일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공안당국의 시각과 달리했다.

그러나 40대이상 중장년층 일각에서는 그동안 '적'으로 여기던 북측과의 국가적 접촉에 대해 흥분과 경계가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퇴역군인인 장모(60.동구 신암동)씨는 "한국전쟁이후 남북간의 화해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여지없이 무너진 바 있다"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북한의 화해제스처를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무원인 김용규(46.수성구 매호동)씨는 "반세기 분단사가 하루아침에 정리될 수 없다"며 "여지껏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 북한의 행동을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20대와 '386'세대 사이에서는 남북정상의 만남이 마치 통일을 이룬 듯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회사원 이성형(30)씨는 "어제 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항 영접은 북한을 보는 고정관념을 깨는 사건"이라며 "마치 통일의 길이 활짝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손준호(28.남구 대명동)씨는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 반세기 남북간의 분단사가 정리되고 한민족이 한 식구가 되는 디딤돌"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또 서울 등지의 대형 유통업체 매장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마스코트, 캐릭터상품이 유행하기 시작,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스타'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편으론 '20대.70년대 출생.90학번'을 대변하는 '279'세대 일부에서는 재래적 안보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워져 달라진 대북관을 엿보게 하고 있다.

천리안이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10일까지 279세대 243명을 대상으로 한국전쟁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해외 체류시 국내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취할 행동에 대해서 99명(40.7%)이 외국에 그냥 머무르겠다고 답했다.

제 3국으로 가겠다는 사람도 10명(4%)인 반면 귀국해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답한 사람은 68명(28%)에 불과했다. 李鍾圭기자 jongk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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