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넷 제국 욕설이 춤춘다

인터넷 인구 1천500만명, 욕이 대명천지를 활보하고 있다. 일부 사이트들이 자체 감시단을 조직, 욕쟁이 색출에 나섰지만 재빠른 '욕쟁이 군단' 의 게릴라식 '치고 빠지기'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올해 들어 지난 6월 1일까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전체 단속 7천574건 중 언어폭력은 1천314건. 욕의 가공할 위력이다. 네티즌 또한 사이버 공간의 최대 문제점으로 욕설을 꼽았다.

그러나 인터넷 상의 모든 욕설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제한돼 있고 종종 폐쇄라는 철퇴를 맞지만 욕을 장려하는 사이트들도 종종 눈에 띈다.

직장인 대상 인터넷 사이트 '김대리'(www.kimdaeri.co.kr)의 '니나 잘해' 코너와 샐러리맨(www. salaryman.co.kr)의 '토크박스'는 직장인의 스트레스 해소 마당이다. 간단히 말해 '계급이 깡패'인 직장에서 상사에게 대놓고 할 수 없는 욕을 여기서 노골적으로 퍼붓는다. 비슷한 유형의 직장상사를 둔 졸병을 만나면 '나도 그런 경우 당했다. 열불 터진다!' 하고 맞장구를 쳐댄다. 이런 코너는 욕의 순기능적 역할이 두드러진다. 이를테면 목젖까지 차 오른 짜증을 시원하게 쏟아내는 하수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망할 주식회사'(galaxy.channeli. net/quad)는 샐러리맨들의 휴식처임을 자임한다. 상사와 선배에 대한 불만과 비난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 자리. '선배가 되려면, 부장이 되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하라!' 하고 거칠게 요구한다.

PC통신 천리안의 '스트레스 클리닉(go stress)'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욕방' 이다. 마음대로 퍼붓고 갈가리 찢어버릴 수 있다. 여기에서라면 부관참시인들 두려울 게 없다.

인터넷 욕 한마디(members.tripod.lycos.co.kr)는 방문자들에게 제발 질펀하게 욕지거리를 뱉어달라고 요청한다. 자신을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고 착한 17세 여학생이라고 밝힌 방문자는 아버지를 향해 섬뜩한 욕을 늘어놓았다. 소녀에게 인터넷 '욕방'이 없었다면 진짜 욕먹을 일을 저질렀을는지도 모른다. 또 한 직장여성은 못된 사장 때문에 위장병까지 생겼다며 '참을 수 없는 욕설의 정당함'을 설파하고 나섰다. 글을 올린 시간은 오전 11시. 사장을 코앞에 둔 근무시간임에 틀림없다. www.ae18.co.kr의 '아무나 욕하기' 코너에도 만만찮은 욕쟁이들이 모여 산다. 사이버 공간에 욕이 창궐하는 이유에 대해 영남대학교 심리학과 정봉교 교수는 "익명성과 조건반사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현실에서 용서하기도 용서받기도 힘든 치명적 욕이 익명성이 보장된 사이버 공간에서는 희석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교수는 "지속적인 욕설은 공격성을 오히려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억제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조언한다.

욕은 아무리 욕을 먹어도 시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잡초와 닮았다. 깔끔한 도시 한 구석에 솟아난 잡초와 정중한 대화 속에 불쑥 끼여드는 한마디 욕은 일상의 윤활유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웃자란 잡초를 보는 불쾌함이다.

曺斗鎭 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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