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을 통해 연말까지 격주로 영남권 독자들과 만날 기회를 얻게 된 것은 내게는 큰 보람이다. 모처럼의 만남을 보다 뜻있게 했으면 하는 궁리끝에 앞으로 반년동안 하나의 주제만을 여러 측면에서 다뤄보기로 했다. 남·북문제, 또는 대북정책이 곧 그것이다.
지난달 평양에서 분단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됨으로써 대북정책은 다시 매우 '현실적'인 시사문제로 부각됐고 모든 언론매체가 그것를 연일 집중보도함으로써 '전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게다가 197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발표가 1회적인 해프닝으로 시말(始末)해 버린 것과는 달리 이번 '6·15 공동선언'은 이산가족의 상봉, 경제·문화·스포츠의 교류 등 인적·물적 차원에서 남북관계가 향후 '지속적'으로 활성화될 전망을 열어놓고 있다.
이처럼 현실적·전국민적·지속적 관심사가 된 대북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평양의 정상회담과 그를 전후한 우리의 언론보도와 공론권의 반응은 어떤 면에서 매우 우려할 만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늘의 남북한 문제를 보고 다루는 시야가 지극히 좁다는 것이다. 공간적 차원에서나 시간적 차원에서나…. 그리고 그러한 좁은 시야의 자연 필연적인 결과가 평양회담에 대해서 지나치게 감정적 내지는 감각적으로 언론은 보도하고 공론권도 그렇게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대통령 일행이 방문해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던 평양은 북한의 수도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전부는 아니다. 서울도 물론 남한의 전부는 아니지만 서울은 남한의 현실을 대표하고 있다. 남한이 안고 있는 공해·난개발·과밀집중 등의 문제를 서울은 축약하고 있다. 그러나 평양은 북한의 현실을 대표하고 있지 않다. 북한이 안고 있는 극도의 식량난·에너지난을 축약하고 있지 않다. 평양은 북한의 '예외적 도시'이다.
남한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시골에서 서울로 전입해 와 살수 있다. 북한에는 그러한 거주지 선택의 자유가 없다. 우리 대표단이 입북해서 멀리서건 가까이서건 만나 본 사람들이란 오직 평양의 주민들이요, 평양의 주민이란 북한체제에선 '선민(選民)' 집단이다. 우리 대표단이 본 평양 주민들을 북한의 평균적인 인간상으로 받아들였다면 그건 단견(短見)이다.
평양에서 돌아온 뒤 KBS-TV의 심야방송에선 학식·덕망을 갖춘 네분의 방문단원이 한 시간이 넘도록 이북의 음식맛에 대한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늘어놓는 것을 보았다. 전세계를 향해 식량 구걸을 하고 있는 북한의 평양 밖에 사는 주민들이 만일 남한의 이 TV프로를 시청했다면 어땠을까. 좁은 시야의 소견이란 사람을 저처럼 무신경하게 아니 무자비하게 만들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나는 그날밤 KBS TV의 평양음식예찬론을 들으면서 새삼 실감했다.
평향이 곧 북한이 아닌 것처럼 대통령 일행이 평양에 머문 2000년6월의 3일 동안이 남북분단의 한국현대사의 전부는 아니다.
반세기만에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만나 악수하고 환담하고 포옹까지 하는 광경을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감격스러웠다. 동족끼리의 분리·이산, 동족끼리 대립, 적대라는 참을 수 없는 비극을 겪어온 우리 누가 그 광경을 보고 감동치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한차례의 포옹과 격한 순간의 감동이 오랫동안 축적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평양의 3일로 6·25전쟁의 3년이 갑자기 해소되는 것도 아니요, 아웅산 폭탄 테러사건이나 KAL기 폭파사건이 소멸되는 것도 아니다. 독일 속담에는 "하느님조차도 한번 일어난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할 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평화적 발전은 우리 모두에게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그럴수록 우리에겐 남북문제는 포괄적·장기적으로 보는 넓은 시야가 절실히 필요하다.
울산대 석좌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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