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역사다. 그만큼 축약된 역사를 보여주는 곳을 우리 주변에선 찾기 어렵다. 지구의 역사, 인류의 역사, 국가의 역사, 이 모든 것들이 박물관 안에는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너무 등한시한다. 이웃 일본엔 국·공립, 사립박물관이 4천여개, 우리나라는 238개가 고작이다. 정부는 국·공립 박물관 건립에도 벅차다는 입장이다. 사립박물관 육성에는 눈을 돌릴 틈이 없다는 뜻. 이 때문에 경쟁력을 갖춘 사립박물관은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나 대다수 박물관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시처를 찾지 못한채 개인 창고 속에서 썩고 있는 소장품도 상당수에 이른다. 최근들어서는 개인 소장품들이 해외로 팔려나가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모두가 이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탁 트였다. 쪽빛 바다와 은빛 물결. 경보화석박물관 가는 길은 바다와 함께 하기에 더욱 즐겁다. 포항에서 강릉까지 해안을 따라 쭉뻗은 동해안 7번 국도. 우리나라 유일의 화석 박물관은 포항에서 흥해, 장사해수욕장을 지나 1km 지점 왼쪽에 있다. 영덕쪽에서 내려오면 삼사해상공원을 지나 5km 지점. 휴게소를 겸하고 있어 한눈을 팔다 보면 자칫 지나치기 쉽다.
2층 계단(1층은 휴게소)을 올라 3천원(청소년 1천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서면 식물화석 테마관인 제2전시관이 왼쪽에 있다. 4억년전 최초의 육상 식물 쿡소니아. 이로부터 출현과 멸종의 시련속에 발달되어온 식물의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매끈매끈한 아름드리 규화목들. 이것이 나무라니. 잘다듬어진 대리석 기둥 같다. 믿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봐도 분명 나무는 나무다. 수억년의 세월은 부드러운 나무도 대리석처럼 굳게 만드는가. 횡단면의 선명한 나뭇결과 나이테는 마치 살아있는 나무를 보는듯 하다. 규화목은 나무가 퇴적암속에 묻혀 있는 동안 규산이 조직에 침투해 속을 채운 후 굳어져서 만들어진 화석. 어디 그 뿐인가. 소나무의 송진속에 굳어져서 만들어진 호박속에 든 3천만년전의 모기 화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경이롭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 공원'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충격이다.
3층에 위치한 제1전시실. 시대·지역·분류별 특징에 따라 고생대관, 중생대관, 신생대관, 한국관, 광물관으로 구성돼 1천500여점의 화석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다.
고생대(5억7천만~2억4천500만년전)관. 5억7천만년전의 시간을 뛰어넘어 모습을 드러낸 삼엽충. 그저 교과서를 통해 보아왔던 손가락 크기 정도 될 것 같은 그런 화석이 아니다. 큰 것은 길이가 30cm에 이른다. 그 시절엔 잠자리도 길이가 1m에 이르는 것이 있었고 진딧물도 30cm나 되는 것이 있었다하니 놀랄 일도 아니다. 게다가 손으로 톡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살아서 달아날 듯 생생하다. 성게, 불가사리와 같은 극피동물의 일종인 해백합(바다나리), 초기 어류인 갑주어, 앵무조개를 포함한 연체동물의 대표격인 두족류, 최초의 담수성 파충류인 메소사우루스까지 다양한 화석들이 발길을 붙든다. 중생대(2억5천만년~6천640만년전)관은 이 시대의 표준화석인 암모나이트와 벨렘나이트 화석이 주다. 브라질의 산타나층에서 발견된 보존 상태가 완벽에 가까운 1억년된 물고기와 곤충화석들, 공룡의 발자국, 알, 골격, 배설물 화석들도 타임머신을 타고 수억년을 거슬러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신생대(6천640만년전~현재)관은 갑작스런 환경변화로 떼죽음을 당한 미국 와이오밍주의 물고기 화석이 볼거리다. 다양한 패류 화석, 척추동물의 화석도 있다. 박물관을 한바퀴 죽 둘러보고 나면 그저 놀랍다. 도대체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모았을까. 이는 박물관장 강해중(59)씨의 20여년에 걸친 집념의 결실. 수석수집을 취미로 했던 강씨가 한국을 포함한 세계 20여개국에서 화석수집에 나선 것은 75년 무렵이다. 사업차 미국을 방문했던 강씨는 친구가 보여준 와이오밍의 물고기 화석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강씨는 화석수집에 매달렸다. 세관통과가 문제. 아무도 화석을 반입한 적이 없었기에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 세금을 매기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캐리어채로 세관에 맡겨둔채 뒤늦게 찾아오기를 부지기수. 2천여점이 모이자 강씨는 96년 4월 박물관을 열었다. 취미로 수집한 화석이 국가적으로, 교육적으로 중요한 자료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람객수는 유, 무료관람객을 합쳐 19만명. 주변에 장사해수욕장을 비롯 수많은 해수욕장과 보경사, 삼사해상공원 등 관광지가 있어 여름철 관람객이 연중 관광객수의 60%에 이른다. 피서철 가족나들이에 초등학생 이상 어린이를 둔 가정이라면 꼭 둘러볼만한 곳이다. 연락처 (054)732-8655.
-鄭昌龍기자 jc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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