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에서 수시로 '밥그릇 싸움'이란 말이 오르내렸다. 아직도 그 말의 불씨들은 사회전반에 잠복해 있다. 이제 우리는 장기간 이런 말과 사귈 각오를 해야한다. 밥그릇과 싸움이란 단어의 결합엔 먹어야 산다는 우리 사람의 진실이 들어있다. 특히 '~권의 소유'나 '~분업' '~통폐합'문제는 결국 밥그릇의 크기 여부로 연결되기에 민감해진다. 이러한 갈등상황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려 성급하게 추한 밥그릇 싸움으로 일반화하여 매도해 가선 안된다. 자신의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문제삼는 것. 그 이의제기가 정당하다면, 이기심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에게 밥그릇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흔히 '밥그릇 싸움'하면 더럽다. 점잖지 못하다고 손가락질해대지만 그렇게 함부로 욕해도 될까. 밥그릇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찾아먹어야 할 진짜 내 밥그릇을 누가 강탈해간다면 싸워야 하지 않는가. 누가 그것을 욕되다고 하는가. 특히 우리 국가사회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국제간의 무역마찰, 강대국이 횡포를 바라볼 때 우리는 내 밥그릇을 챙기는데 실로 용맹정진 해가야 함을 절감하는 터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이처럼 배부르고 여유 있는 자들이 과욕으로 배고픈 자의 것을 빼앗거나 한치 양보도 없이 제 몫을 챙기는 경우 더러운 밥그릇 싸움이라 매도해도 마땅하다. 너무나 동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자들이 강자의 약탈에 대해 목숨을 걸고 제몫을 지키는 것은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정당방위의 투쟁이다. 이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싸울 것은 싸우고, 또 그것은 제 3자에 의해 잘 조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해 당사자에게 무엇이 공익이고 또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설득해가야 한다. 밥그릇을 챙겨먹는 밥상 위의 질서와 도덕성에 큰 결함이 있다면, 그것이 과감하고도 냉정하게 고쳐져야 진정한 화해도 뒤따른다. 다만 그에 관한 질서재편, 규범개정 과정에서 당사자간의 이해득실에 대한 민감한 계산 차이로 합의도출이 쉽지 않다. 으레 정부가 중재자로 개입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밥그릇을 나누고 합해가면서, 또한 질서를 바로잡는 정부측의 공정성 여부는 참으로 중요하다. 칼자루를 쥔 자의 철학과 도덕성에 하자가 없어야 한다. 과연 정부는 공정한가. 우리 사회의 밥그릇 싸움에서는 대체로 권세 있고, 권력을 등에 업은 기득권자들, 이른바 목소리 큰 사람들이 이긴다는 관행이 큰 문제다. 그러니 모든 것을 수단과 담보로 우는 소리, 큰 목소리른 낸다. 그렇지 않으며 눈뜨고 당한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힌다. 우리가 늘 아쉬워하는 것은 이런 갈등상황에 개입하여 중재할 만한 '공정한 제3자'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밥그릇을 공정하게 나누고, 게다가 밥을 먹고사는 인간으로서의 큰길을 가르쳐줄 수 있는 신뢰할 '어른'이 없다. 갈등의 대부분은 엄청난 정치적 파워 게임으로 돌변한다. 그때 정부가 힘있고 큰 목소리에 떠밀려 슬쩍 그 팔을 들어주는 식이라면 공익 실현 의지는 사라지고 사익(집단이익)의 애매한 중재에 그칠 뿐이다.
가진 자, 힘있는 자의 밥 한 그릇은 따분한 일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힘없는 자의 그것은 바로 생명 줄이다. 만일 정당한 이유와 방법의 싸움이라면 매도하지 말자. 밥그릇은 여전히 성스러운 것이다. 특히 밥그릇을 나누기 위해 칼자루를 쥔 정부는, '나누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이나 누군가를 위한 몫을 챙겨선 안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약자를 누르고 강자.기득권를 편드는 공권력이라면 그것은 이미 흉기나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영남대교수.철학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