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컴퓨터와 동거 조성호씨

전화, 텔레비전, 라디오, 오디오… 그 어느 것도 별도로 필요 없다. 컴퓨터 하나면 부족할 게 없다. 원룸 아파트 한 쪽에 마련된 작은 컴퓨터로 인터넷 세상과 연결된 사나이. 삼성생명 봉덕 영업소 조성호(28)씨는 오늘도 5시간 이상 인터넷을 접속한 채 살아간다.

회사에서 고객 관리를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간은 약 1시간. 분주한 아침에 미처 알려주지 못한 전달사항은 인터넷 일괄호출 기능을 이용하면 간단하다. 단 한번 클릭에 문자 메시지가 되어 70여명의 설계사 휴대폰으로 날아가 꽂힌다. 퇴근 후에는 잠들 때까지 컴퓨터 앞에 바싹 다가앉아 서핑에 열중한다.

부산이 고향인 조씨는 지난해 대학 졸업과 함께 직장을 좇아 대구에서 보금자리를 틀었다. 낯선 도시에는 함께 술잔을 기울일 친구도 없었고 지리에 익숙하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인터넷이 도우미가 돼 주고 친구가 돼 주기 때문. 마음만 먹는다면 동네 슈퍼의 매장에 진열된 라면과 달걀도 배달시켜 받을 수 있다.

그에게 인터넷은 사랑의 메신저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 무료 전화 다이얼 패드를 이용하면 부산에 있는 애인과 요금 걱정 없이 휴대폰 통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 "같이 부산에 산다고 해도 지금처럼 자주 얘기 나누기는 힘들 겁니다. 거짓말 같지만 여자 친구가 오늘 오전에 부장한테 어떤 꾸중을 들었는지도 벌써 알고 있어요".

조씨는 얼마전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텔레비전 드라마 '허준'도 빼먹지 않고 인터넷으로 시청했다. 17인치 화면인데다 접속자가 많을 때는 동영상이 조금 굼뜨긴 하지만 굳이 방영 시간에 맞출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좋은 점도 많다.

올 여름 제주도로 떠날 예정인 휴가 준비도 이미 국내 6개 대형 쇼핑몰을 꼼꼼히 비교해 본 후에 가장 값싸고 알찬 상품으로 완료했다. 렌터카를 빌리는 일, 기차표를 예약하는 일도 모두 인터넷으로 끝냈다.

조씨의 인터넷 사랑은 학창시절 PC통신에서 자연스레 연결된 것.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자신이 점점 거인처럼 느껴진다는 그에게 인터넷은 첨단 기술이라기보다 생필품 같아 보였다. 아직은 일반인에게 텔레비전만큼 만만하지는 않은 인터넷, 그러나 조성호씨가 사는 모습은 머잖은 장래에 우리가 흔히 만나는 이웃의 풍경이 되리라 싶었다.

曺斗鎭기자 earful@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