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창가에서-사회의 실패

진실을 추구했다는 이유 때문에 목숨을 바쳐야 했던 대표적인 그리스인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이전에 똑같은 이유로 죽임을 당한 최초의 그리스인이 있었으니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팔라메데스였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자 꾀많은 오뒤세우스는 무조건 참여하기로 했던 과거의 약속을 저버리고 원정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보다못한 팔라메데스가 동참을 권유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그는 실성한 척하며 암소에 쟁기를 걸고 해변의 소금밭을 갈고 있었다. 그것이 위장된 행동임을 꿰뚫고 있던 팔라메데스는 오뒤세우스의 어린 아들을 엄마품에서 빼앗아 쟁기 앞에 놓았다. 할 수 없이 오뒤세우스는 쟁기질을 그만 두고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진실을 왕따시키는 사회

진실 앞에 발가벗긴 오뒤세우스는 전쟁 중 비열한 방법으로 팔라메데스에게 복수를 단행한다. 오뒤세우스는 트로이의 포로 한명을 붙잡아 적장이 보내는 형식의 거짓 편지를 쥐어 주었다. "팔라메데스가 그리스를 배반하고 귀순한다면 크게 환영한다"는 내용과 합의한 황금에 대해 적혀 있었다. 그리고는 팔라메데스의 침대 밑에 황금을 몰래 갖다 놓았다.

포로는 이 편지를 일부러 그리스 진영에 떨어뜨렸고 팔라메데스는 즉각 반역 혐의로 체포됐다. 팔라메데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으나 오뒤세우스는 "그의 침대 밑을 보라"고 했다. 황금이 나오자 팔라메데스의 동료들은 만장일치로 그를 돌로 쳐서 죽이는 형벌을 가했다. 팔라메데스는 죽으면서 "나보다 먼저 죽은 진실에 애도를 표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스 신화에서 진실을 말하다 엄청난 화를 입은 인물은 티레시아스이다. 하루는 제우스와 헤라가 남녀교합(交合)의 쾌락 정도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해결이 나지 않자 예언자이자 양성(兩性)인 티레시아스에게 물었다. 그는 거침없이 "그 기쁨을 10이라 한다면 여자가 9를, 남자는 1을 차지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화가 난 헤라는 티레시아스의 시력을 빼앗아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유는 여신의 사랑의 비밀을 폭로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진실은 이처럼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진실은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 요즘 우리 사회의 진실성 수위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나라에서 주식투자를 하면서 회사의 수익률, 건전성, 장래성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뛰어들면 실패의 지름길이다. 그러나 경제부처의 고위 공직자들이 많이 갖고 있는 주식을 사두면 틀림없이 성공한다고 한다. 주식시장의 허구성을 빗댄 말이다.

◈사회를 지키는 힘

시장이 이처럼 공정한 경쟁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일부의 힘에 의해 움직여지면 시장은 기능을 잃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시장의 실패(The failure of market)'라고 한다. 최근 한 재벌 2세가 몇 달만에 주식투자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린 것도 시장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시장을 지키는 힘이 '공정한 경쟁' 이라면 사회를 지키는 힘은 바로 진실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조차 날치기를 해서라도 목적을 달성해야만 그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 이런 무리들에게 진실을 위해 자기희생을 하라고 요구한다면 어디 씨알이나 먹혀들겠는가.

◈진실의 탑을 쌓자

진실이 결핍된 상태를 '사회의 실패' 라고 하자. 시장이 실패할 경우 금융이나 재정정책 등 시장개입으로 치유가 가능하지만 사회가 실패하면 외세가 개입한다. 부(富)와 똑같은 높이로 진실의 탑을 쌓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천민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인가, 진실을 위해 몸부림치는 용기있는 지성이 주위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자,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됐으니 우리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러. 어느 쪽이 더 좋은 지는 신만이 아실 겁니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독백이 복더위를 식히는 매미소리처럼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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