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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리뷰-과학의 속성

과학(科學, science)의 사전적 의미는 '연구 대상의 구조·성질·법칙을 탐구하는 인간의 인식 활동과 그 산물로서의 체계적 지식'이다. 이처럼 과학은 그 지식과 조직 체계로서 정의할 때, 넓은 의미에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이라 하면 자연 과학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연구 대상을 물질로 제한한 좁은 의미의 과학이다. 영어 단어 science(과학)는 원래 '알다'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전통적으로 과학 지식은 관찰이나 경험으로 발견된 자연의 불변적 진리가 체계적으로 누적되어 형성되고 발달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과학적 진리가 끊임없이 바뀌어 온 과학사는 이와 같은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했던 힘과 운동의 개념이 갈릴레오의 실험에 의해서 부정됨과 동시에 뉴턴의 고전 역학으로 대체되었으며, 그것이 다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교체되었다. 고대의 천동설도 16세기에 지동설로 바뀐 다음, 20세기에 들어와서는 현대의 우주론으로 발달하였다. 이와 같이 과학 지식이 계속 변화되고 발달했다는 사실은 과학 지식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새로운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진술들의 체계임을 말한다. 따라서, 현대의 인식론자들은 과학지식이란 자연에서 발견된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구성한 잠정적인 설명 체계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과학 지식은 과학자들에 의해 그 의미와 속성이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가변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사에 잘 나타나 있는데, 과학자는 과학적 사실들이 단순히 누적되어 발달한 것이 아니라 그 구성 요소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거나 그 의미가 부단히 변화되어 온 과정이다.

실증주의자들은 과학 지식과 그 체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것은 과학적 사실, 개념, 법칙 및 원리, 이론, 가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답한다. 과학적 사실은 단 한 번에 관찰하거나 경험한 것을 기술한 단일 진술이나 자연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기술한 진술이고, 과학적 법칙은 여러 사건과 현상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규칙성을 진술하는 복합 진술이라고 설명한다. 과학적 개념은 여러 사건이나 사물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속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과학적 이론은 과학적 사실과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명제의 형식으로 구성된 추상적인 진술을 말한다. 여기서 과학적 법칙이 관찰 가능한 진술로 기술할 수 있는 현상의 규칙성을 의미함에 비하여, 과학적 이론은 직접 관찰할 수 없는 대상을 가리킨다. 또 과학적 가설은 과학적 법칙과 이론이 검증되기 이전에 내세워진 임시적인 진술이라는 점에서 서로 구분된다. 이 때 과학적 가설은 여러 번의 검증을 통해서 그 참가치와 타당성이 확인될 경우 과학적 법칙이나 이론으로 불리며, 반증될 경우는 그냥 버려져 과학 지식에서 제외된다. 실증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적 사실은 영원히 불변하는 진리로서 과학 지식의 확고한 바탕이 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수행되는 관찰에 의해서 과학적 사실이 발견되면, 그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과학적 개념이 구성되거나 과학적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적 이론이 형성되는 것 등의 과정을 거쳐 과학 지식은 체계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과학 철학자들은 과학적 사실이 객관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자연의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뿐더러 과학 지식의 확고한 바탕도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끼고 있는 색안경의 색깔에 따라 세상을 누렇게 보거나, 파랗게 보듯이, 과학적 사실은 관찰자가 어떤 기대감, 선행 지식, 사전 경험을 바탕으로 그와 관련된 자연의 사물과 현상을 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진술될 수 있는 잠정적 명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과학적 사실은 상식적 지식을 이루어 인간이 과학적 현상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는 인간이 경험하거나 관찰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본다면, 동일한 자연 현상일지라도 관찰자에 따라 다른 의미로 이해되기 때문에 우리가 관찰하여 수집한 과학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얻은 과학 지식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지금 우리가 획득한 과학 지식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시대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상대적이고 잠정적인 것을 의미한다.

과학이 가치 중립적이라는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첫째는 과학의 이론이나 법칙이 개인의 주관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과학적 지식은 그 자체로서 가치에 관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려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과학자나 사회 구성원은 그 연구 결과의 사회적 이용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하게 되었고 생태계 파괴, 전쟁유발, 인간의 기계 부품화 등의 문명 위기가 초래되었다. 과학적 지식은 인간의 가치 관념 형성에 무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은 인간의 가치 설정 과정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마땅히 주어야 한다. 사실상 과학은 우주와 생명, 인간과 사회에 관해 그 참모습을 포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인간이 마땅히 살아나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데 중대한 이바지를 할 수 있다. 과학과 과학 기술은 인류에게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지만. 양날이 있는 칼날과 같아서 잘못 쓰면 안락한 삶을 위태롭게 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과학 지식과 과학 기술의 이용 가치는 사회적 합의와 문화적인 가치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54차 문제

문제:돈의 의미에 대하여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오늘날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이나 재화 축적 수단 이상의 복합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래의 제시문들을 근거로 삼아 현대 사회에서 돈이 지니는 의미를 개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질과 관련시켜 논술하시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언제나 일반 선원의 자격으로 바다에 나간다. 선원 일은 나의 노고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 주기 때문이다. 동전 한 푼이라도 승객에게 돈을 지불한 예는 없다. 반대로 지불하는 쪽은 오히려 승객이다. 돈을 지불한다는 것과 돈을 받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차이인가? 돈을 받는다는 것, 이를 무엇에 비할 수 있겠는가? 돈은 지상의 온갖 악의 근원이므로 돈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우리의 뿌리깊은 믿음을 생각하면 사람이 돈을 받기 위해 행하는 갸륵한 수고야말로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아아, 얼마나 즐겁게 우리는 그 파멸에 몸을 맡기고 있단 말인가? -허먼 멜빌, '모비 딕'

㈏ 가난이 도덕적인 이상(理想)으로 나타나게 되면 그에 상응하여 화폐의 취득은 가장 위험한 유혹, 진정한 악(惡)으로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가난을 절대적인 가치로까지 고양시켰던 그러한 내적인 마음 자세는 초기 프란시스코와 수도사들에게서 가장 열렬하고 명확하게 나타난다. 그들에게 가난은 독립적인 가치 혹은 심원한 내적 요구의 상관 개념이었다.

이와 같이 가난은 적극적인 소유물이 되었다. 가난은 영혼의 구원이라는 신성한 재화의 획득을 매개했고 다른 한편으로 경멸적이고 세속적인 재화를 얻기 위해 돈이 수행하는 것과 똑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돈과 마찬가지로 가난은 실제적인 일련의 가치가 흘러들어 가고 다시 풍성하게 되어 흘러나오는 저수지였다. 가난은 지고한 의미에서 '세계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에게 속한다'는 사실의 표현인 것이다. 돈을 포기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 속에서 - 마치 탐욕스러운 사람에게 돈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 모든 사물 중에 가장 순수하고 정묘한 것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프란시스코파 수도사들은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으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불리워졌다. -게오르그 짐멜, '돈의 철학'

㈐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부(富)가 가져오는 불행에 대하여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꾸며 낸다. 마이다스는 자신의 딸을 황금으로 변하게 했고, 모든 것이 손대는 족족 황금으로 바뀌는 바람에 음식조차 먹지 못했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부자가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그것은 최근의 사회 과학적 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부유해질수록 그만큼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부는 많은 소비재를 구매할 능력을 부여하지만, 오히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에게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부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고용하거나 해고하고, 승진시키거나 좌천시킬 수 있으며, 사업을 시작하거나 그만둘 수도 있고, 사업체를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옮길 수도 있다. 부유한 사람은 주위의 물적·인적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 반면에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주위의 환경에 순응해야 한다. -레스터 C. 서로우, '부의 구축(構築)'

---52차문제 최우수작

요즘 의약 분업을 둘러싼 의사들의 파업 문제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의약 대립으로 인하여 환자들은 그들의 싸움 가운데에서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속수무책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힘을 가진 자들이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약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통합성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이다. 따라서 약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자세에 대한 반성과 그것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일은 우리 사회를 성숙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제시문 ㈎에서 다수자의 압제는 일반적으로 사회가 경계해야 할 해악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때 다수자는 단순히 산술적 수의 많음만을 의미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 재력을 가진 자 등이 사회적 다수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통상 사회적 강자가 된다. 그리고 제시문 ㈏에서는 다름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그 '다름'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강자(다수자)와 약자(소수자) 간의 차별 현상으로 나타나는 데 문제가 있다.

다수자가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소수자를 차별하는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한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들의 여성차별도 문제이다. 외국인 근로자들도 또한 차별 받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이다. 이런 차별은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차별적 상황은 우리 사회가 통합성의 위기에 직면하도록 한다. 계층 간, 세대 간, 지역 간의 분열을 조장하여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소수자도 당연히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불행할 때 그 사회를 행복한 사회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족 중 하나라도 불행할 때 가정 전체가 행복할 수 없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소수자는 존중되어야 한다. 소수자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깊이를 더해 주는 존재들이다. 다수자들이 소수자를 존중하는 만큼 그들의 몫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어떤 면에서는 누구나 소수자이며, 상황은 항상 바뀔 수도 있다. 소수자가 다수자에 의해 차별 받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비장애인은 장애인에 대한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우리 사회의 공동 성원이다.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으로 이들을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차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인간적 차원으로 대하는 평등의식을 지녀야 한다. 교육 과정을 통하여 양성성을 계발시키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유린 문제도 그들을 단순한 소수자로 취급하여 박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그래서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대할 때 해결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적지 않게 목격되는 소수자가 다수자에 의해서 차별당하고 억압당하는 사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수자의 소수자의 가치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자세, 소수자들을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하는 평등의식과 공동체 의식의 확립이 필요하다. 다수자의 작은 배려가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을 줄여 사회 통합이라는 큰 일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증가시켜 민주 사회의 성숙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손 다 미(효성여고 3년)---52차 문제 총평

52차 논술 문제는 시사적 문제와 논술자의 세계관을 연결시켜 생각해 보는 문제로 의도되었다. 최근의 대학별 출제 경향은 고전 자료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 문제와 관련되는 핵심 논제를 학생 스스로가 이끌어 내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유형의 문제는 그 해결 과정이 지시문 자체에 제시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이런 유형의 논술문은 그 성패가 제시문으로부터 핵심 논제를 추출해낼 수 있는지의 여부, 또 추출해낸 논제를 현실 상황과 연결 적용하여 논지를 전개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좌우된다. 학생들은 평소에 폭 넓은 독서와 현실 경험을 통하여 비판적, 창의적 사고 능력을 기르고 꾸준한 글쓰기 과정을 통하여 논리적 표현 능력을 기를 때 좋은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게 된다.

이 문제는 제시문 ㈎, ㈏를 바탕으로 현실 상황에서 구체적 사례를 찾아 낸 다음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제시문 ㈎에서는 '다수자의 압제의 해악성'을, ㈏에서는 '다름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논술자는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를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번에는 효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손다미 학생의 글을 최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손다미 학생의 글은 제시문을 충실히 분석하여 논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돋보인다. 특히, 본론 첫째 단락에서 제시문의 핵심 내용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나름대로 정리해 내어 논지 전개의 바탕을 마련한 점이 돋보인다. 또, 서론에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사회 통합성의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한 점은 본론의 논지를 설득력 있게 전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참 잘한 것이다. 본론에서 구체적 사례 제시와 개선 방안 모색이 서로 대응되도록 전개한 점은 연계성을 살릴 수 있어 잘 된 것이다. 끝으로, 논지가 선명한 글이 되도록 하려면 결론에서 주제문을 간단하면서도 명확하게 작성하는 것이 중요함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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