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긴 이별, 재이산의 아픔 등 50년 만의 만남은 7천만 겨레 모두의 가슴에 감격과 환희, 회한과 눈물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북한국적의 고려항공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이들이 북으로 돌아가고 북으로 갔던 사람들이 다시 남으로 날아온 3박4일 동안 공동취재단에 참여했던 본사 특별취재단의 취재후기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의 문제점과 과제 그리고 뒷얘기를 전한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번 고향방문 때와 달리 상봉 정례화의 물꼬를 텃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일회성에 그칠 지는 더 두고 봐야 하지만 정부나 북한 태도를 볼때 추가 상봉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행사방식과 상봉형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만약 추가 상봉이 이뤄진다면 호텔과 별도 식사, 시내관광 등 이런 소모성 행사는 없어야 합니다. 이는 북측 방문단에서도 나온 소리입니다. 가족들끼리 잠도 자고 고향에도 가자는 거지요.
▲고령자가 대부분인데 행사일정도 너무 빡빡했습니다. 상봉에 오.만찬, 시내관광 등 쉴틈없이 움직이는 일정에 방문단이 힘겨워 했습니다. 마지막날 30℃가 넘는 무더위 속에 창덕궁 참관에 나섰던 방문단은 이구동성으로 무리한 일정을 나무랐습니다.
▲그렇지만 방문단이 일정을 무사히 소화해 큰 사고가 없었던 것은 다행입니다. 첫날 밤 민병옥, 박성녀씨 등 90이 넘은 노인들이 앰뷸런스 상봉을 할 때는 취재진이 인산인해를 이룬데다 상봉 모자 자체가 너무 흥분해 있어 무슨 변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젖먹이까지 상봉인원 포함
▲상봉인원을 5명으로 제한한 것은 북측의 요구인데 젖먹이까지 상봉인원에 넣은 것은 문제였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인원수 제한 때문에 애들을 못데리고 간 가족도 있었습니다. 젖먹이가 무슨 정치성이 있습니까.
▲상봉기간 내내 북측 가족들은 "김정일 장군님 덕에 서울왔다"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단체상봉장에서 북한 TV기자가 자기 테이블에 왔을 때는 이런 찬양조(?)가 더했습니다. 개별상봉 때는 더했습니다. 북한 기자가 들어서면 '김일성 주석', '김정일 장군님' 말을 더 크게 하는 겁니다. TV를 의식한 것 같기도 하고….
▲북측 방문단을 동행해 온 기자들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남한 시민들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상봉행사에 대한 시민여론은 어떤지, 신문.방송의 보도 태도는 어떤지 매일 체크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북측 방문단 환영 프래카드가 얼마나 내걸렸는지 파악하기 위해 사진기자 2명이 직접 소형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북측 방문단 100명의 신원은 행사기간 내내 관심거리 였습니다. 게다가 북측은 공항에서 나눠준 명찰을 호텔 도착 즉시 떼버렸기 때문에 신원파악에 애를 먹었습니다.
▲당초 북측이 방문자 명단을 통보해올 때부터 신원은 파악이 안됐습니다. 명단만을 통보해 오는 바람에 학계.예술계 유명인사들도 우리측 언론이 자체 자료로 파악을 했던 겁니다.
▲북측 단장으로 온 유미영씨 문제는 늘 화제였습니다. 월북자가 단장으로 온데 대한 부정적 여론에서 부터 남한의 자녀들과 만나느냐 마느냐까지 다양했습니다. 심지어 이번에 유씨가 단장으로 왔기 때문에 2차 때는 대선 전에 월북한 오익제씨가 단장으로 올 것이라는 루머도 돌았습니다.
▲북측 이산가족들은 평양으로 간 우리측 이산가족과 달리 행사기간 내내 바깥출입이 없었습니다. 웬만하면 호텔내를 둘러볼 수도 있었는데 경비가 삼엄했던 탓도 있지만 기자들이 별도로 접촉할 기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도착한 날 호텔에서 북측 방문단끼리 별도 미팅을 가진 것을 볼 때 모종의 지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습니다.
2차 단장은 오익제
▲남북한 간의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첫날 코엑스 만찬 때 일인데 북한 방문단들이 대한적십자사 직원들에게 술을 많이 권했지요. 그런데 적십자 직원들은 차를 운전해야 한다며 술잔 받기를 주저했습니다. 음주운전에 대해 북측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북측 이산가족들이 묵고 있는 워커힐 호텔에는 깜짝상봉 장소로 유명한 데가 있습니다. 숙소가 있는 본관에서 별관 식사장소로 가는 지하통로에 있는 곳인데 카지노 앞 로비입니다. 상봉인원 제한 때문에 북측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남측 가족들은 이곳에서 기다리다 오.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통로로 가는 가족들을 만나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깜짝상봉은 북측 방문단이 시내관광을 하는 데도 이어졌습니다. '계관시인' 오영재씨도 창덕궁 입구에서 기다리던 동생을 극적으로 상봉했습니다. "니가 영숙이냐"고 하는 오씨에게 영숙씨는 "오빠. 너무 늙었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50년 분단의 아픔은 곳곳에서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86세된 신정현 할머니가 찾았던 오빠 구현씨 사망소식은 기자가 시인 오씨를 통해 확인해 줬습니다. 오빠 오씨는 김일성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작년에 세상을 떴다는 겁니다. 창덕궁 관람때 이를 확인해주자 신 할머니는 망연자실해 했습니다. 그후 신 할머니는 올케 소식이라도 알자며 기자에게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워커힐 호텔은 이산가족 상봉장소이기도 했지만 이산의 한을 재확인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첫날 북측 방문단이 호텔에 도착하기 전부터 나와 있던 납북자 가족들은 남북자 송환을 호소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이외에도 북한에 있는 부모형제를 만나게 해달라는 호소는 줄을 이었습니다.
▲이번 상봉기간 내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 정부의 태도는 늘 문제였습니다. 특히 북측과의 관계 악화를 의식해 상봉 일정 등에 너무 양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첫날 단체상봉 후 코엑스에서 가진 만찬에 원래는 남한 가족들이 참석하기로 돼 있었지만 북측에서 자신들만 참석하겠다고 해 남측 가족들은 만난지 두 시간 만에 또다른 이산을 맞봐야 했습니다.
▲그것만 있는게 아닙니다. 둘쨋날과 셋째날 북측 참관조의 오찬 때도 당초 일정과는 달리 우리측 가족들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당국자는 "당초 우리가 발표한 일정은 남측 구상에 불과하다"고만 변명했습니다.
부처가 힘겨루기도
▲보도통제도 일부 있었습니다. 북측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을 우려한 우리측의 일방적인 조치였습니다. 첫날 단체상봉 때 북측 이산가족들이 동창생을 찾는 내용이라든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찬양한 내용들은 프레스센터 기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기자들이 이를 항의하자 정부측은 "북측과 협의중"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행사기간 동안 정부 각 부처가 힘겨루기를 한 흔적도 역력했습니다. 통일부, 국정원, 국정홍보처가 각각 나와 있는데다 청와대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이들 부처 직원들끼리 알력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행사장 출입결정권을 놓고 국정원은 안된다는 사람을 국정홍보처에서는 된다고 하고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이번 상봉기간 동안 워커힐 호텔에는 몇몇 정치지도자가 다녀갔는데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부인 한인옥 여사를 대동한 것이 또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상봉장에 부인을 대동한 것이 대선용이라는 거지요. 일부에서는 총재비서실이 이 총재가 참석하는 모든 행사는 대선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50년만의 역사적 상봉을 지켜보는 국내외의 관심은 프레스센터에 등록된 기자 수만 봐도 알수 있습니다. 당초 국정홍보처는 취재진이 많아야 1천명 미만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날 집계 결과 2천명 가까이 된 겁니다. 실제로 내외신 268개사에 1천980명이나 됐습니다.
▲때문에 프레스센터가 설치된 워커힐 호텔에서는 기자들 때문에 별별 해프닝이 많았습니다. 첫날 밤에는 취재진의 식사편의를 위해 정해놓은 식당에 음식이 동이나 많은 기자들이 호텔주변을 전전하기도 했습니다.
정리.李相坤기자 lees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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