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이산가족과 법

70년대초에 상영됐던 영화 '남과 북'은 마치 30년앞 오늘을 내다본 것처럼 느껴져 새삼스럽다. 라디오 드라마로 더 유명했던 이 영화의 주제가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는 가수 현미가 불러 아직 우리들 귀에 익어있다. 최무룡, 신영균은 북한에서 절친한 친구였고 신의 애인 엄앵란이 바로 비극의 주인공이다. 6·25전쟁은 신을 인민군으로, 월남한 최는 국군으로 만들어 놓는다. 간신히 혼자 월남한 엄은 애인의 친구인 최를 우연히 만나면서 새정이 들어 가정을 꾸민다. 그러나 신은 오직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던 애인을 찾아 사선에서 탈출, 그들 두사람앞에 나타난다. 최는 친구와의 의리와 이미 아내가 된 친구의 옛애인을 두고 고민하다 결국 신에게 양보를 결심한다. 그러나 엄은 이젠 이미 남의 아내가 됐다며 신을 거부하면서 돌아선다.

멜로드라마가 때론 이렇게 우리현실을 너무나 리얼하게 묘사하는 바람에 관객의 최루성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이산가족상봉에서 함께 처와 자녀를 북에 두고 월남한 이선행·이송자 부부의 평양 가족상봉 장면도 기가 막힌다. 남편의 북한 처의 손을 잡고 스스럼없이 '반갑습니다' '건강하십시오'라며 다소 과장된듯한 이송자씨의 행동뒤에는 분명 두 여인들끼리만 통하는 '묘한 경계심'이 전혀 없다고는 할수가 없을 것이다. '통일이 되면 영감을 양보하겠다'는 말도 이미 80고령에 통일이 생전에 이뤄질 수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얘기일 수도 있다.

이보다 더 애처로운건 북에서 내려온 하경씨의 사연. 아내는 이미 자식까지 시집에 맡기고 재혼한 형편, 그 아내는 이틀씩이나 북의 남편을 거부하다 마지막날 겨우 만나긴 했지만 '재혼'이란 죄책감에 남편얼굴을 제대로 볼수 없는 그 '억하심정'을 헤아릴 수는 없다. 우리시대 마지막 남은 '여자'를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기막힌건 남쪽아내에게 이미 죽은걸로 인식돼 있는 북의 처를 그의 딸과 만나러 갔던 어느 70대는 '그 사실'조차 남쪽아내에게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취재도 거부해야하는 '밀행'이었고 그런 '북행'이 숱하게 많았다는 사실이다.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씨앗투기'. 그건 전쟁에도, 온 나라가 울어도 어쩔수 없는 불가사의인가 보다. 문제는 그들부부는 이미 70~80고령으로 얼마안가 세상을 뜨겠지만 남북의 그 자녀들 문제는 호적·상속 등등 '복잡한 미래'와 '또다른 분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이런 송사(訟事)도 있는 만큼 이들의 법적 해결문제에도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할 계제이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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