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 하는 지역 대기업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진 마당에 빈사상태에 빠진 지역 경제를 회복시킬 유일한 방안은 중소기업 활성화 뿐이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지역 중소기업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잡초처럼 끈질기게 연명해 왔다. 외환위기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추스리며 가까스로 재기를 노리던 중소기업들은 다시금 우방 부도라는 악재를 만나 휘청이고 있다. 협력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제조관련 기업들조차 이번 사태가 몰고 올 파장을 염려하며 잔뜩 움추리고 있다. 지역에 제2의 외환위기가 닥친 것이다.
'단종 소문이 나도는 낡은 트럭'
언젠가부터 지역 금융가에는 대구.경북 금융을 고물 차에 비유하는 자조 섞인 우스개가 나돌고 있다.
경제의 대동맥인 금융을 수송기관인 자동차로 표현할 때 지역금융은 쌩쌩 속도를 낼 수 있는 성능을 가졌거나 날렵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새 차는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퇴출사태로 신형이기는커녕 타이어 두세 개 정도는 펑크난 채로 겨우 엉금엉금 달리는 시늉만 낸다는 게 어울린다고도 한다. 생산이 끊길 것이란 소문은 앞으로 금융구조조정이 진행되면 살아남은 지방 금융기관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일부의 악의 섞인 비방이고.
이 비유가 적확한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역금융은 올해도 존립기반 자체를 흔드는 각종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고물 차를 수리 정비하는 기간이었다기보다는 새로 엔진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우선 지역 금융기관의 탈대구.경북이 계속됐다. 동양투신을 이어받은 삼성투신은 4월초 당좌계정을 대구에서 서울로 옮겨 사실상 대구를 떠난 뒤 이제는 삼성증권과의 합병을 내세우며 아예 공식화하고 있다.
하나 있는 창업투자회사인 인사이트벤처도 내부적으로 서울행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능위축 역시 뚜렷하다. 5월 중순 터져나온 영남종금 영업정지사태는 지역 유일의 종금사 명맥을 거의 끊다시피 하는 지경에 이른 뒤 간신히 수습됐다. 문제는 영남종금이 앞으로 지방종금사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나 하는 것. 공적자금 투입으로 회생하기는 했지만 예금보험공사 자회사라는 새로운 신분은 예전처럼 겉과 속이 똑같은 지방 금융기관으로 역할하는 데 아무래도 장애가 될 여지가 많다.
"이젠 지역을 떠날 곳도, 문 닫을 곳도 거의 없다시피 한 것 아닙니까?" 2금융권의 한 회사대표는 지역 금융기관의 실정을 이렇게 압축했다.
그러나 지역금융의 위기는 앞으로 또 한 차례 본격화할 듯 싶다. 2차 금융구조조정, 내년 예정인 예금자보호한도 축소방침 등이 몰고 올 위기가 그것이다. 특히 2금융권은 퇴출이나 동종업체간 합병바람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신용협동조합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현재 금융정책기조는 대형 금융기관만 살아남게 하자는 것"이라며 "밑천 두둑한 이가 결국 따는 '카지노경제'논리가 횡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활로는 막혀버린 것일까. 물이 낮은 데로 흐르듯이 돈은 이윤을 따라 흐른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물꼬를 잘 틔어주면 넓은 들에도 골고루 물이 갈 수 있다. 지방금융을 살리는 물꼬는 당국의 정책의지와 지역민의 의지다.
"지역에서 조성된 자금은 지방은행 등 지역 금융기관에 전담예치하고, 우체국예금이 지역에 돌도록 하며, 상호신용금고나 신협 등이 업무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하고, 지방은행이 역할을 다하게끔 2금융권 업무를 허용하는 등의 정책이 뒤따라야 합니다" 경북대 최용호 교수는 최근 열린 지역균형발전 정책토론회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그리고 이러한 제안을 가능케 하는 힘은 역시 지역민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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