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들에게 최고의 차그릇으로 꼽히는 것이 있다. 일본의 키자에몬이도(喜左衛問井戶) 다완이다. 그것은 조선시대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쓰였음직한 사발이다. 밥, 국, 술 등 다양한 음식이 담겨졌을 막사발. 그런 그릇이 가루차를 풀어 마시는 차그릇으로 용도가 바뀌면서 일본의 국보 자리에 오른 것이다.
우리 문화에 심취했던 일본의 저명한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 宗悅)는 그의 저서에서 "그 사발에서 작위적이지 않은 무심의 도를 발견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직인은 문맹이고, 가마도 보잘것 없으며, 아무렇게나 불을 땠고, 그릇에 모래가 달라붙어도 구애받지 않았다. 값은 헐하며, 그 누구도 거기에 어떤 꿈을 부여하지 않았다"라고 서술했다.
그 그릇의 겉모습을 우리가 무심코 넘겨 본 것처럼 야나기도 우리 도자기의 외적인 환경만을 본 것이다. 이것은 비단 야나기 뿐만 아니라 일본인이 바라보는 우리 도자기의 현실이다. 도공뿐만 아니라 많은 조선시대의 공인들은 문맹이었다. 그러나 천한 계층의 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살아간 것은 아니다. 그들은 도자기를 만드는 데도 전문적으로 분업화돼 있었다.
또한 기술면에서도 당시 세계적으로 자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조선과 중국 뿐이었다. 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은 재료와 만드는 방법,가마에서 불때는 기술까지 경험과 기술이 축적돼 있었다는 뜻이다. 또 그릇에 모래가 달라붙었다는 것도 여러 점을 함께 구움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야나기의 말은 언뜻 우리 사발을 최고의 차그릇으로 칭찬하는 것 같지만 그 속내엔 진정한 최고는 일본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그릇의 좋은 점을 발견한 사람이 일본인이고, 반면 조선인의 미의식이나 그릇을 만든 환경은 형편없었다는 뜻이다. 혹 우리도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이렇듯 일본인의 체계화된 미의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것이 아름답다면 그것을 만든 이도, 그 환경에도 아름다움이 깃들여져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진정한 우리의 미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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