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고의 봄이 오려나",밀로셰비치 13년 철권통치 종말

민중의 힘은 13년 철권통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유고 시민과 야당은 대규모 반정부시위끝에 5일 의사당, 국영 방송 등을 점령하면서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의 독재정권의 종식을 고했다. 야당연합의 단일 대선 후보인 코스투니차는 이날 국영방송에 출연해 정권인수와 새시대의 출범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 순번제 의장국인 프랑스는 코스투니차가 유고연방 세르비아공화국의 합법적인 권력을 대표한다고 인정, 늦어도 9일까지는 유고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도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대로 제재를 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4일 대선투표 이후 2주일 이상 시위를 벌여온 유고 시민과 야당은 5일 베오그라드에서 30여만명이 모인 가운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코스투니차는 국영방송에 출연,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유고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오늘 새로운 날이 시작됐다"며 "선거를 통해 권력이 바뀌었다"고 선언했다.

군과 경찰은 시위대를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도 않았다. 군중들이 의사당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은 수십발의 최루탄을 쏘는 데 그쳐 시위대는 별다른 제지없이 의사당을 점령할 수 있었다.

코스투니차는 의회선거 당선자들로 구성된 새 의회 개원을 촉구했다. 한 야당의원은 빠르면 6일 오전 새 의회가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밀로셰비치의 행방에 대해 야당 지도자 진지치는 국영TV에서 "현재 세르비아 동남부 도시인 보르에 숨어 있다"고 6일 말했다. 보르는 베오그라드 동남쪽 100㎞에 위치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접경 도시이다.

유고정국 어디로 가나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코스투니차가 5일 유고 정국을 장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로써 이날 최대 고비를 맞았던 유고 사태는 또다른 상황으로 진입했으며, 현재까지도 행방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밀로셰비치가 어떤 형태로 재반격을 시도할지가 주목되고 있다.

◇민중의 힘 = 밀로셰비치에게 5일까지 퇴진하라고 요구하면서 야당이 이날 총궐기토록 호소한 뒤 시민들은 베오그라드에서만30만명이 운집해 연방의회 건물에 진입했으며, 또 다른 시위대는 국영 TV방송사(RTS)를 점령했다. 의사당 진입에 성공한 시위대는 세르비아 깃발과 야당(세르비아 민주야당, DOS)의 깃발을 들고 의사당 유리창에서 건물 밖의 시위대를 향해 환호했다. 의사당 유리창에 붙어 있던 밀로셰비치의 초상화는 땅에 떨어졌다. 현관 홀에서는 불이 났고, 의사당 근처에 있던 경찰차량 5대를 포함, 최소 7대의 차량이 불길에 휩싸였다. 경찰이 최루탄과 곤봉을 이용해 진압에 나서 시위대 5명 이상이 부상하기도 했으나 경찰 일부는 곧 시위대에 합류했다. 또 다른 시위대는 국영 TV 방송사S를 점령했다. 시위대는 불도저를 앞세워 건물 벽을 무너뜨린 뒤 안으로 진입했다. 경비 경찰 대부분은 도망쳤고 일부는 시위대에 합류했다. 한때 모든 방송이 중단됐으며, 스튜디오B 방송사도 시위대에 의해 장악됐다. 베오그라드는 이날 야당의 시위 요청에 부응해 주변 도시 등에서 차량을 이용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몰려든 30만명 이상의 시위 인파로 메워졌다. 시위에서 지금까지 소녀 1명이 숨지고 최소 100명 이상이 총상 등 부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야당의 국정 장악 = 유고 야당 지도자 코스투니차는 5일 "세르비아가 밀로셰비치의 지배로부터 '해방'됐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날 베오그라드 도심에 운집한 수십만 군중을 향해 "내가 유고의 대통령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새로 선출된 상하원 의원들의 합동 총회를 한국시간 6일 새벽 4시 소집했다.

연설에서 코스투니차는 "우리는 밀로셰비치 정권의 마지막 순간을 보고 있다. 세르비아에 민주주의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또 "공산주의는 몰락하고 있다. 몰락은 시간 문제다"고 단언했다. 그동안 밀로셰비치의 충실한 나팔수 역할을 해 온 관영 탄유그 통신도 이날 "코스투니차는 유고의 선출된 새 대통령"라고 공식 호칭했다. 이날 상황과 관련해 미국 백악관 역시 "밀로셰비치가 국내 상황 통제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앞서 유고 헌법재판소장은 지난달 24일 치러졌던 1차 대통령 선거는 무효라고 선언하고 조만간 재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헌재의 결정을 비난했다.

◇밀로셰비치의 행방 = 코스투니차는 연설에서 "밀로셰비치는 호화 자택에서 도망쳤다"고 주장했으며, 그가 소속한 야당 관계자도 "그가 이미 자택으로부터 도망쳤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밀로셰비치가 부인과 함께 도피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대해 미 국무부 대변인은 "그가 아직 베오그라드는 떠나지 않은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밀로셰비치가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현지시간 5일 밤 8시20분 쯤 AN26 군 수송기 3대가 베오그라드 군 공항을 이륙한 것으로 알려져 그와 측근들의 탈출설이 나오고 있다. 야당 지도자인 조란 진지치는 그가 "벙커에서 반격을 준비 중"이라고 주장했다.

외신종합=박종봉기자 paxkore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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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당은 밀로셰비치 통치의 상징. 여기에는 5일 일단의 젊은이들이 먼저 진입, 집기와 컴퓨터를 부수며 밀로셰비치의 퇴진을 요구했다. 밖에서는 15만명의 시위대가 "세르비아, 세르비아!" "보요, 보요!"(보요=코스투니차의 애칭)를 외치면서 춤을 추고 환호하며 승리를 축하했다.

시위대의 의사당 진입은 폭동 진압경찰이 시위대의 의사당 출입구 접근을 막기 위해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시작됐다. 야당 지도자들은 진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멀리 차차크에서 온 거친 군중들은 경찰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때 수십명의 경찰이 대열을 이탈해 방패와 헬멧 등을 버리고 시위대에 동참했다.

이 순간 의사당 내부의 경찰이 갑자기 최루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물러서기는 커녕 전진하면서 문과 창문을 부수고 경찰 차량에 불을 질렀다. 시위대가 의사당에 진입한 뒤 1층에서는 바로 불길이 치솟았고, 시위대는 밀로셰비치의 초상화를 부수고 의자와 컴퓨터 등을 건물 밖으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입주해 있는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에서는 밀로셰비치의 이름에 기표된 투표용지가 가득찬 자루가 발견되기도 했다. 밤이 되면서 코스투니차는 연기로 검게 그을린 의사당 건물을 배경으로 모인 수많은 시위대 앞에서 밀로셰비치의 평화적 퇴진을 요구했다. 수십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한때 무질서한 모습을 보이던 베오그라드는 이제 '피의 시대 종식'을 환영하는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경찰이나 군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으며 시위대를 막던 바리케이드도 없어졌다. 국영 언론사들도 눈덩이 처럼 불어난 시위대에 의해 점거됐다. 카타리나씨는 "밀로셰비치 정권이 끝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며, "나는 이 모든 것이 냉정하게 기분좋은 승리로 마무리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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