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입논술 쟁점 리뷰-성 차이

오늘날에도 성적 차이를 낳는 생물학적 기원에 대한 탐구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남녀의 모든 차이가 생물학적 조건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회 생물학자들은 남녀간의 차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우리 몸 곳곳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도저히 변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재의 위계 질서에 저항하는 사회 운동에 대해서도, 그것은 진화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생물학적 기원에 대한 설명에는 많은 문제점이 숨겨져 있다. 그런 설명은 우선 생물학적 기원을 고정된 것으로 상정하면서 인간을 마치 초기에 설정된 프로그램처럼 바라본다. 그리고 생물학적 원인으로부터 남성과 여성 사이에 어떤 차이가 유래한다고 인과 관계를 설정할 때, 그 중간에 설명되지 않은 간극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것이 '과학적 사실'임을 강변한다. 가장 큰 위험은 그것이 '과학적 사실'에 기반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 너무나 쉽게 진리와 동일시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학적인 실험 결과도 실험 주체의 해석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고 본다면, 단순히 남녀 사이의 생물학적인 차이를 기준으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이를 성차(性差)라고 한다)를 강조하고 나아가 이를 근거로 여성이 열등한 존재임을 확인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비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다.

생물학적 성차가 강조되기 시작한 18세기부터 이미 그 배경에는 당시의 정치적인 지형 변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18세기는 신분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다양한 집단의 사회 운동을 중심으로 정치적 영역이 확장된 때이다. 그런데 이시기의 역설은 신분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동시에 집단-여성과 남성, 흑인과 백인, 빈자와 부자, 식민지와 제국-간의 차이를 부각시키려는 시도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 때부터 남녀 뿐만 아니라 인종이나 민족의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발견되는 차이는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우월과 열등이었다. 그리고 이 차이는 불평등한 사회 관계를 정당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현상적으로 남녀에게서 차이가 발견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가 얼마만큼 생물학에서 기원하고 얼마만큼 사회 문화적 요인에서 기원하는지는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 예컨대 '남성성(男性性)', '여성성(女性性)'이라는 말에는 생물학적인 성차 외에도 사회적인 성차 개념이 개입되어 있다. 이를 젠더(gender)라고 하는데, 흔히 생물학적인 성차인 섹스(sex)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면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지만 체격이 왜소하고 섬세한 사람을 여자답다라고 한다거나, 생물학적으로는 여자지만 체격이 크고 괄괄한 성격의 여자를 남자답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젠더에 의한 구분이다. 이처럼 성차에는 생물학적인 차원과 사회 문화적인 차원이 있으며, 현실 생활에서 이 두 가지 차원은 명확하게 나뉘어 있기보다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구분할 수 없다.

사회적 성, 즉 젠더에 관한 논의들은 사회화의 결과로 성 역할이 학습되는 측면에 주목한다. 부모, 가족, 학교, 대중매체 등은 성 고정 관념에 따른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여자와 남자라는 성 정체성을 직간접적으로 내면화한다. 이렇게 해서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관념이 통용되는데, 이러한 고정관념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투명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러한 신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기 기술자라고 하면 당연히 남자일 것이고, 회사 사장이라고 할 때도 당연히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낮에 집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주부일 것이라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여성적 일과 남성적 일에 대한 고정 관념의 산물이다.

최근에 와서는 이처럼 남성성과 여성성에 근거하여 남성의 일, 여성의 일을 구분하는 식의 성 역할 규범이 다소 억압적이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폭을 좁힌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결과 가정에서 남성이 가사에 참여하는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사회에서도 남성이 미용사나 간호사 일을, 여성이 버스 운전사나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을 맡음으로써 성차에 의한 노동의 차별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성 역할 분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즉, 소수의 예외적인 슈퍼우먼들과 유리한 조건에 있는 여성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여성들에게는 그들의 현실적 조건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남성적'인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그와 동시에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이라는 압력까지 받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일수록 현모양처 노릇을 잘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만 한다. 왜냐 하면 여성의 일차적인 자리는 '가정'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자아 실현을 하면 할수록 여성성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 결혼 또는 남성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차이대로 인정하되, 그것이 현실 사회 속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구조적인 모순으로 작용되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러한 현실 모순을 타개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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