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상덕의 대중문화 엿보기

'속임수의 대가(?)' 나훈아.오스트리아의 저명한 미학자 어네스트 한스 조세프 곰브리치는 예술창작을 "하나의 속임수 작업"이라 정의했다. 허구적 상황을 통해 인간은 즐거움을 느끼게 되며, 그 즐거움의 과정이 인간 정서에 해롭지 않은 속임수와 같다는 의미.

생명짧은 연예계에서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서두를 나이인 54세. 가수 나훈아는 그 나이에도 한국 뿐 아니라 해외를 오가며 매년 50여 회의 콘서트를 갖는다. 희끗한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와 흰 티셔츠가 잘 어울리는 남자. 1천600여 곡의 히트곡을 부른 가수이자 작사·작곡가.

그는 지난 4월에도 로맨틱한 감정이 아직 남아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대구·경북의 중장년 8천여 명을 모아 놓고 "아마 난 평생을 못 잊을 것 같아. 너를…"이라며 열창했다.

특히 대구·경북의 중장년층은 대중문화 공연장엔 얼씬도 않는 계층. 나훈아는 그런 그들과 함께 노래부르고, 웃고, 울게 만들었다.

'나훈아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뛰어난 가창력도 가창력이지만 '이웃집 사내' 같은 친근함때문이다. 시커먼 얼굴과 하얀 이를 드러낸채 구성진 꺾기 창법으로 '18세 순이'를 부르거나, '느끼하게' 경상도 사투리라도 합쳐지면 누구나 '나훈아'가 된다. 그러한 동질감, 가창력, 향수,인간적 구수함 등등이 나훈아가 뿜어내는 코드들이다. 그의 카리스마다.

대중가수들의 대마초 흡연, 팬들과의 시비와 폭행사고, 립싱크, 팬클럽간의 충돌…. 가뜩이나 너저분하고 답답한 현실에 지친 우리들을 더욱 짜증나게 하는 것들이다.

대중문화의 주역은 대중스타다. 그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고, 새로운 힘을 솟게하는 별로서 반짝여야한다. 그래야 대중은 지불한 돈에 상응하는 즐거움을 얻고, 또 스타로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흔한 잡음 하나 없이 독특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영원한 오빠'나훈아. 공연장에서 "뒤에 계신 할무이들 참 힘든 걸음 하셨는데, 앞에 오소 마!" 라며 앞의 관객을 뒤로 밀어도 오히려 웃게 만드는 그 즐거움들이 이 가을 그립다. 설혹 그것이 인기를 위한 귀여운 속임수일지라도 말이다. 〈대경대 방송연예제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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