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4일 국정감사중 여권실세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정현준 펀드' 가입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이주영(李柱榮) 의원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 향후 수사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의원 발언이 국회의원의 면책특권(免責特權) 범위에 해당되는지를 놓고 당사자인 여야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이견을 보이고 있어 검찰이 처벌여부를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면책특권=헌법(45조)은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책특권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국회는 의사당 만을 뜻하는 게 아니고 국정감사 등 의사당 밖에서 위원회를 소집해 의원이 활동하는 경우까지 포함된다. 또 면책범위는 민·형사상책임을 아우른다.
이는 국회가 정부에 대한 정책통제 기관으로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이 자유롭게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다.
◇면책특권의 예외=폭력행위나 험담, 핀잔 같이 의원의 직무라고 볼 수 없는 행위는 면책특권 대상이 아니라는 게 법학계의 통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나 판례가 아직 없다.
국회의원의 명예훼손성 발언이 자주 논란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면책특권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면 면책특권의 예외를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증권가 등에서 나도는 설을 근거로 허위사실을 퍼뜨려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보호해 줄 가치가 없다는 논리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면책특권을 악용한 한탕주의식 폭로가 가져오는 폐해가 엄청난 만큼 허위사실에 근거한 명예훼손성 발언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의 예외를 인정하는 등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명예훼손 소지가 있어도 사실을 적시했다면 국민의 알권리 충족차원에서 보호법익이 있다고 봐야 하지만 설이나 루머를 근거로 명예를 훼손했다면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게 다수설"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사례=면책특권이 인정된 대표적 사례로는 이른바 국시(國是) 논쟁과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유성환(兪成煥) 전 의원과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된 추미애(秋美愛) 민주당 의원이 꼽힌다.
서울지법은 유 전 의원이 지난 87년 '국시는 반공이 아니고 통일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대정부 질문 원고를 사전에 기자들에게 배포한 것은 면책 대상이 안된다고 봤으나 상급심에서 이같은 판결이 뒤집혔다.
또 검찰은 이 판결을 인용, 97년 11월 국회 예결위 질의에 앞서 '부산 모 건설업체 자금의 국민신당 유입설' 관련 자료를 사전 배포,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추미애 당시 국민회의 의원에게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수사전망=검찰은 "통상적 절차에 따라 수사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다.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정치싸움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까닭에서다.
검찰은 일단 이번 사건의 핵심쟁점이 면책특권의 범위인 만큼, 관련 판례 등을 폭넓게 수집, 법리 문제를 정밀하게 검토한 뒤 본격 수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그러나 면책특권에 관한 법리문제는 별도의 논의로 치더라도 비리혐의가 뚜렷하지 않은 명예훼손 사건에서 정치인 수사가 한번도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수사도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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