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국판 이인제 '랄프 네이더'

미국판 이인제?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랄프 네이더 녹색당 후보가 민주당 고어 후보의 표를 잠식해 부시 공화당 후보의 우세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대 정당 후보가 1%p 내외 차이로 접전한 여러 주(州)에서 2∼4%를 얻음으로써, 바로 그 '미세한 승부 표' 작용을 한 것.

그가 얻은 표는 전국적으로 3%에 달하며, 네이더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그 반 이상은 고어에게 돌아갈 표였던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다.

그는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 참가하지 못하고 선거 기부금도 별로 받지 못한 열악한 상황에서 플로리다.미네소타.미시간.오리건.워싱턴.위스콘신 등 최대 경합지에서 선전, 고어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특히 개표 막판에 플로리다 등 몇개 주에서 고어.부시가 득표율 1∼2% 차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네이더가 2∼4%를 얻음으로써 충격이 더 컸다. 결정적 격전지로 양대정당 후보가 득표율 49%대 49%의 접전을 벌인 플로리다에서도 2%를 빼앗아 결정타를 날렸다.

오리건 주에서는 네이더가 4%를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에게 투표한 사람들 중 61%가 "네이더가 아니었다면 고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대답했고, 10%만이 "부시에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네이더는 양대 후보가 1%p 차로 접전한 위스콘신 주에서도 4%를 득표했다.

워싱턴 포스트 신문은 7일자에서 "네이더가 한정된 자원으로 가장 효과적인 선거 운동을 했다"면서, "그의 가장 큰 성과는 지지자들의 관심을 워싱턴의 양당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그들에게 도전할 진보적인 정치개혁 운동을 구축하는 쪽으로 쏠리게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네이더의 맹약은 색깔 없는 한국 선거판에서의 '이인제 상황'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구분론도 있다.

그의 선전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환경운동이 확산되고 보건과 빈곤 문제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200년간 양당제도를 구축해 온 미국 정치권에 제3의 당 출현 가능성을 던져 줬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독일에서는 환경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는 녹색당이 2년 전 사상 처음으로 집권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하는 등 위세를 떨치고 있다. 미국에서도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어, 그의 선전을 가볍게 봐 넘길 일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네이더는 막판 선거운동에서 기업처럼 돼버린 정치권력과 대규모 자금을 동원하는 기존의 정치풍토를 비판하는데 주력했다. 또 고어 쪽으로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주장을 비난했다. 네이더로부터 위협을 느낀 민주당은 "네이더 지지가 결국 고어의 득표력을 떨어뜨려 부시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 네이더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사퇴 압박을 일축하면서, 환경문제를 비롯해 정부에 대한 집단적인 압력 행사, 보건문제, 빈곤층 문제 등의 이슈를 공론화 하는데 주력했다. 자신이 고어후보의 표를 잠식했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그의 표가 줄어 들었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라면서, 자신에게 투표한 사람들 중 40%는 고어나 부시 중 어느 쪽에도 투표하지 않았을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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