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 데스크-상처없는 새는 없다

그 매섭던 IMF 한파를 겨우 벗어났나 했더니 또 경제가 흔들거린다. 굴지의 대기업들이 비틀거리고, 구조조정의 눈보라가 눈앞에 닥쳐온다. 홈리스들이 다시 유령처럼 거리를 떠돌고,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며, 수많은 가정들이 가계파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자고 일어나면 '~리스트'니 하는 대형 사건들이 툭툭 터져나오고, 혀를 내두르게 할 만큼 교묘한 사기사건은 또 왜 그리도 많은가? 게다가 일부 10대 소녀들은 용돈을 벌기 위해 이른바 원조교제(정말이지 이 용어는 적절치 않다. 무엇을 위한 원조이며 교제인가?)라는 이름의 윤락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권은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여전히 그 모양들이고.

그런가하면 서울의 일류 백화점에선 200만원이 넘는 아동용 모피코트가 선물용으로 인기라고 한다. 어느 가난한 부모들이 업동이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버렸을 아기들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죽어가는 모습이 오버랩될때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요즘 우리사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게 우리의 한계인가?'하는 자괴감에 휩싸이게 되곤 한다. 온통 우중충한 느낌뿐이다. 한때 리턴 추세를 보이던 해외 이민이 다시 급증하는 사실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분명히 어딘가에 비상구가 있을 터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상처입은 우리 사회

구부정한 어깨의 풀죽은 군상들을 보노라면 '우울'이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이 사회에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상처입은 새'에 관한 얘기가 생각난다. '상처입은 독수리들이 벼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기시험에 낙방한 독수리, 짝으로부터 따돌림받은 독수리, 윗독수리로부터 할큄당한 독수리.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만큼 상처가 심한 독수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울함 곳곳에 번져

이때 망루에서 파수를 보고 있던 영웅독수리가 쏜살같이 내려와서 이들 앞에 섰다. "왜 자살하고자 하느냐?" "괴로워서요. 차라리 죽어버리는게 낫겠어요". 영웅독수리가 말했다. "나는 상처하나 없을 것 같니? 이 몸을 봐라". 영웅독수리가 날개를 펴자 여기저기 상처가 나타났다. "이건 날기시험때 솔가지에 찢겨 생긴 것이고 이건 윗독수리한테 할퀸 자국이다. 그러나 이건 겉의 상처일 뿐이다. 마음의 빗금자국은 헤아릴 수도 없다"

영웅독수리가 말했다. "일어나 날자꾸나. 상처없는 새들이란 이 세상에 나자마자 죽은 새들이다.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상처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정채봉 '상처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이제 곧 12월. 새 백년 새 천년이 온다고, 온 세상이 들썩거리던 때가 바로 얼마전인 것 같은데 2000년이 벌써 저물어간다. 거리엔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고 시간은 한 해의 끝을 향해 빠르게 달려간다.

##아파하지말고 극복하자

대학 입시철이다. 곧 수능시험 결과가 발표되고 또 한판 극심한 눈치전쟁이 벌어질 게다. 기대보다 수능성적이 나쁘게 나오거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게된 학생들도 생겨날 것이고 어쩌면 깊은 절망의 나락에 빠질 수도 있을게다. 또다시 불어닥칠 구조조정의 회오리앞에서 이 겨울은 우리를 더 꽁꽁 얼어붙게 할 것 같다. "왜 하필 나에게만…"하며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암울하게 여겨질때 한번쯤 이런 생각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이 세상에서 상처없는 사람이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마음의 빗금이 없는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기들뿐이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마음의 빗금을 보는 눈의 차이인 것을. 인생을 잘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상처없는 삶이 아니라 얼마나 큰 상처를 어떻게 잘 극복했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어떤 성직자가 고통당하는 사람을 찾아가 두 개의 보석을 보여주었다. 크기나 색깔은 비슷하지만 하나는 흐릿하고 하나는 광채나는 것이었다. 성직자는 말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흐릿해 보이는 보석은 8번 깎았지만 광채나는 보석은 80번 깍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우리를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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