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형들의 옷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딸애에게 겨울 코트가 생겼다. 아내가 회색 오리털 외투를 한 벌 사준 것인데 아주 따뜻해 보인다. 허나 색상이 무채색이라 여자아이 것으로는 좀 투박해 보였다. 그 이유를 아내에게 물으니 남동생이 크면 물려주기 위해서란다. 고개가 끄떡여졌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나의 부모님은 사남 일녀를 두셨다. 가운데 딸 하나를 두고 위아래로 아들이 둘이다.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형제 많은 집은 늘 그렇듯 큰 형의 옷은 둘째 형에게, 둘째 형이 입던 옷은 나에게 넘어오게 마련이었다. 따라서 나에게는 누빈 옷(?)이 많았다.

한번은 부친의 친구분이 우리 형제 모두에게 겨울 외투를 한 벌씩 사준 적이 있었다. 허나 모친의 말씀대로 조심성이 없었던 나는 그 옷을 어느 추운 겨울날 초등학교 난로 가에서 멋있게 태워먹고 돌아왔었다. 그 옷도 결국 누벼졌고 이 일로 인해 새 옷 입을 자격은 영구히 박탈된 셈이 되었다. 눈치 빠른 동네 친구들이나 집안의 친척들은 대번에 내가 입은 형들의 옷을 알아채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자존심도 상하고 한편으로 새 것에 대한 갈망도 암암리에 강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이는 삶 속에서 형제들의 존재에 대해 깊이 각인될 터이고,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이 아이가 이렇게 컸구나' 라고 아무 일 없이 성장했음에 가슴을 쓸을 것이며, 그간 살아온 세월의 기억을 새삼 떠올리다 '그 때는…' 하며 삶을 반추할 수도 있을 터이다.

나도 지금 그렇게 느끼고 싶다. 아이들을 키운 지 12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큰 애 옷을 작은 애가 입는 모습을 보고 사고 없이 무사히 자라준 것을 고맙게 느끼고싶다. 커 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간 살아오며 들끓었던 우리 부부의 무수한 허욕과 실수, 그 고됨을 그런대로 넘어섰던 일을 되새기고 싶다.

대구대교수.국문학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삼성전자와 SK 등 주요 기업들이 영남권에 대한 312조원의 투자 계획 중 107조원을 올해 집행할 예정이며,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 속도감을...
스위스 명품 시계 제조사 오데마 피게가 8월 31일까지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무료 체험형 전시 '시간을 빚다: 르 브라쉬에서 부산...
대구 군위군이 조성 중인 180홀 규모의 파크골프장 1단계 사업이 다음달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김진열 군위군수는 시설 점검을 통해 이용자의...
제13호 태풍 돌핀이 9일 중국 저장성 위환 인근 해안에 상륙하면서 상하이의 두 공항에서 약 1384편의 항공편이 취소되었고, 저장성 원저우..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