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살찐 사람이 부자로 보였다. 처녀도 어느 정도 퉁퉁해야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란 소리를 들었다. 보릿고개 때 굶어 죽는 사람이 흔하던 시절에 피죽을 끓여 먹고 나무뿌리를 캐 먹는 사람은 피골이 상접할 지경으로 야위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이다. 유교의 정치 원리가 지배했던 조선조에는 '부녀자 삼덕(三德)'이라 해 수덕·심덕·육덕을 갖춘 사람을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삼았는데 바로 육덕이 '비만' 선망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젠 세태가 너무나 달라졌다. 우리의 경제 수준 덕이지만 살찐 사람이 너무 많아 '살 빼기 열풍'이 날이 갈수록 드세지고 비만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말이 학계에서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주부들의 살 빼기 인터넷 바람도 점차 거세지면서 이를 겨냥한 사이트들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5년 새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비만자 비율이 해마다 3% 포인트씩 늘어 성인 3명 중 1명이 비만 상태라 한다. 보건복지부가 서울대 보건대학원 문옥륜 교수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 비율이 32.7%(남 33.1%, 여 32.2%)로 국민 건강에 적신호를 켜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5년 안에 그 비율은 인구의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비만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상식을 넘어설 정도다. 비만자의 60% 가량이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요통 등의 질환을 갖고 있다. 체질량지수(BMI)가 26 이상이면 고혈압·이상지혈증 발병 위험이 정상의 3배 이상, 통풍·만성심장질환·당뇨병·골관절염은 2,3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비만 관련 질병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1조17억원에 이르러 국민 의료비의 5%를 차지하고 있다.
칼로리 섭취량 과다, 운동 부족 등이 비만의 주요 원인이므로 생활양식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정부 차원의 정책은 거의 전무하다. 심지어 비만·과체중에 대한 정부 차원의 판단 기준마저 없어 학술단체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비만 관련 질병들을 막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정부·지역사회·대중매체·식품회사들이 체중 증가를 유발하는 환경을 개선하는데 적극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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