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적 찾는 한국만화

'이 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올린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고(故) 황순원선생의 '소나기'의 한 장면이다. 시골 소년의 눈에 비친 분홍빛 도회지 소녀의 모습이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마치 순정 만화를 보듯 청명하다.

통상 순정만화라고 하면 얼굴 반을 덮는 커다란 눈망울, 기형적인 길쭉한 팔다리가 전형처럼 돼 있다. 순박하고 복스런 우리네 모습을 그대로 닮은 작품은 왜 나오지 않을까. 지난달 비디오로 출시된 애니메이션 '하얀마음 백구'(손오공 제작)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적인 소재와 신선한 이야기로 훈훈한 한국적 정감을 보여줬다. '하얀마음 백구'는 아버지의 실종으로 여동생 솔이를 돌보는 소년 가장 동이와 이들의 친구 진돗개 백구의 가슴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해 10월부터 SBS TV를 통해 방영된 작품으로 13편 시리즈를 엮어 비디오로 출시된 것.섬마을을 배경으로 아기 진돗개 백구가 투견판에 끌려가 모험을 겪다 다시 돌아온다는 줄거리가 감동적이다. 기존의 자극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한국형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들의 인기에 힘입어 (주) 손오공은 올해 13편을 추가로 제작할 계획이다.

또 한 편은 순정만화 작가 김종화(52)씨의 '한국단편문학선집'. 이달 초 시공사에서 출간될 이 작품은 김동인의 '배따라기', 황순원의 '소나기'에서부터 70년대까지 총 60편의 한국 단편소설을 만화로 옮긴 것.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 등 오랫동안 잊고 있던 추억의 소설들을 만화로 되살려낸다.

무엇보다 큰 특징은 캐릭터들이 한국적인 모습이란 것. 통통하면서도 복스럽고, 선도 간결하고 곱다.

원작의 대사도 그대로 옮겼다. 현대적으로 각색했으면 하는 출판사의 유혹을 뿌리치고, '두불'(두번 째), 지리가미(휴지) 등 그 시대에 쓰이던 순 우리말을 그대로 썼으며 각주를 달아 요즘 아이들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배경 그림에 대한 고증에도 세심한 신경을 썼다.이 달 초 1,2 권이 출간되며 올해 안에 총 10권까지 낼 계획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