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이게 사는 일인가 돌아본다언 땅이 녹으면 되리라

꽃이 피면 되리라

비바람 계절만 지나면 되리라

언제까지고 이게 사는 일인가 돌아본다

삶은 언제까지고 유보되고

삶은 그리움으로만 남고 우리는 사라진다

사는 일과 유보하며 사는 일

나와 나의 허구가 대칭을 이루며 산다

돌아보니

살았다 해야 하나

아, 산다는 말은

틀린 말

그리워하는 일이라고

할 말을

-백무산 '사는 일이 아니라 그리워하는 일'

백무산은 영천 출신의 80년대 대표적인 노동자 시인이다. 강고한 신념과 당파성으로 무장한 시를 써온 이 시인에게 이렇듯 삶의 페이소스가 짙게 드리워진 시가 있다는 사실도 뜻밖이다. 속고 속아서 한 평생이란 말과 인생은 속는 재미로 산다는 말이 있다. 물론 이 때 속는다는 것은 희망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새 세상에 대한 '당위'로 똘똘 뭉친 이 시인에게도 삶은 역시 만만찮은 것인가 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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