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적절치 못한 美 무기구매 압력

한국의 대형 전력 증강사업을 둘러싼 미국의 대한(對韓) 무기구매 압력이 심상치 않다. 미국의 해당 방위산업체가 느닷없이 우리 신문에 "대한민국의 평화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신문광고를 내는 등 입체적 로비에 나선 가운데 미 대사관과 의회, 행정부가 노골적인 '구매 요청'까지 하는 등 부산하다. 특히 콜린 파월 미국무장관이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장관에게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FX) 사업 기종으로 F15K를 채택할 것을 요청하고 나선 것은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과거에도 물론 한국의 전력 증강 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어김없이 미국이 무기구매 압력을 가해온 게 사실이기 때문에 얼핏 봐서는 "또 압력인가" 정도로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는지 모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이 한국의 대북정책과 무기 구매문제를 연계시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남북 대화에 정권의 운명을 걸고 있는 정부로서 느끼는 압박의 강도는 과거 어느때보다 클 수밖에 없다.

요컨대 남북문제를 비롯 국제관계에서 미국과의 굳건한 공조가 절실한 우리 입장에서는 이러한 미국측의 집요한 구매요청이 어느 일면 이해는 가면서도 한편으론 솔직히 말해 불쾌하다.

내정간섭이라고까지 표현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처럼 자신의 국익을 위해 전방위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전통적인 양국의 우호관계를 생각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미국은 최신예기라는 F15K기종을 일본이나 이란 등에는 이미 10여년전에 공급한 바 있다. 그러고도 자기네 국익만을 고려, 우리에게만은 끝내 공급하지 않았던 게 저간의 사정이다.

그러다 한국의 무기 구매가 미·러·불·EU2000 등의 4파전 양상을 띠자 부랴부랴 여러가지 호조건을 내거는 한편 가능한 모든 압박 수단을 동원하고 나서니 참으로 야박하다. 이러고서야 미국이 세계의 지도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의 주력기종인 F16기의 미사일 오발 사고가 불량 부품때문이란 사실까지 밝혀진 현시점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만큼 한국군 전력증강 사업은 이번만큼은 정치논리로 풀어나갈 것이 아니라 공정한 기준으로 값싸고 우수한 무기를 선택토록 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차제에 율곡비리나 린다김 사건 같은 비리가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무기구매 과정이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처리될 것을 당부한다.

엄정하게 따져보아 미국의 F15K기가 가장 효율적이라면 물론 선택돼야할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한·미 안보동맹을 내세워 강압하고 나선다면 의연하게 대처하라. 그것이 주권국가 정부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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