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유럽의 중세는 '암흑의 시대'로 불려진다. 근 1천년의 세월을 암흑으로 단정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신성은 있으되 인간이 없다'는 점은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규정짓는 가장 큰 이유다.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암흑의 시대, 과학혁명에 불을 지른 중세인인 그는 '고집불통의 이단자'로 평가된 버림받은 천재였고 평범한 아버지였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희열과 고난의 길을 동시에 걸었던 그의 삶과 중세의 역사를 다룬 '갈릴레오의 딸'(홍현숙 옮김,생각의 나무 펴냄)은 종교적 권위와 과학적 실증 사이에 깊은 갈등이 빚어진 갈릴레오의 시대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저자 데이바 소벨은 뉴욕타임즈 과학부 기자를 지낸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갈릴레오 연구의 권위자. 살아 숨쉬는 인간 갈릴레오의 생생한 호흡을 역사의 뒤안길에 남은 그의 딸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의 입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축의 이야기 또는 갈등 구조가 교직된 전기다. 갈릴레오의 천재성과 업적이 한 축이지만 무게중심을 가진 축은 인간 갈릴레오와 위대한 천재의 가정사라 할 수 있다.
갈릴레오는 베네치아 출신의 아름다운 여인 마리나 감바와의 오랜 동거 관계에서 큰 딸 비르지니아(1600-34)를 얻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사생아로 태어난 관계로 갈릴레오는 그녀를 가난과 고행의 삶을 살아야 하는 수녀원에 보내야 했다. 그녀 나이 16세때다. 갈릴레오의 명석함과 근면함, 예민한 감수성을 물려받은 그녀는 아버지가 별에 매혹되었음을 알고 수도명을 마리아 첼레스테로 택했다. 갈릴레오는 이런 딸 마리아와 교감했다. 서로 주고받았던 수많은 편지 가운데 남아 있는 편지는 모두 124통. 이 편지에는 갈릴레오의 고뇌와 아버지에 대한 딸의 사랑, 당시의 사회상 등이 잘 나타나 있다.
갈릴레오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태양의 전면을 가로질러 끊임없이 움직이는 흑점들을 보았고, 직접 '사랑의 어머니'라고 칭한 금성이 달처럼 보름달에서 초승달로 주기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같은 갈릴레오의 모든 발견은 반세기 전에 제기되었으나 증거 부족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것이었다. 갈릴레오의 노력으로 이 학설의 증거가 제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갈릴레오는 도발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글을 발표하고, 만찬 파티장에서 목청 높여 논쟁을 벌이는 등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엄청난 영광의 이면에는 사람들의 반감과 의혹이 도사리고 있었다. 1616년 교황과 종교재판관은 천체의 움직임에 관한 사항은 교황에게 맡겨두는 게 최선이라며 그를 질책했다.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더 큰 위기가 이어졌다. 1624년부터 그는 필생의 역작인 '대화'의 집필에 매진, 우여곡절 끝에 완성했다. 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1633년 종교재판소에 소환돼 이단 심문을 받는다. 결국 자신의 이단 혐의를 인정하고 참회를 맹세했지만 가택연금을 당하고 '대화'는 이후 200년동안 금서 목록에 오르게 된다.
'아버지께 더없이 소중했던....'으로 시작되는 1623년 5월의 마리아의 첫 편지로 풀어나가는 이 책은 눈물로 얼룩진 124통의 편지와 17세기 이태리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이단으로 의심받는 아버지를 믿고 격려하는 마리아. 세상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는 공통점으로 이들 부녀는 서로 믿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가족사를 일궈냈다. 파란만장했던 천재의 삶, 르네상스의 열기가 무르익고 메디치가가 쇠락해가던 17세기의 사회상이 책전면에 펼쳐진다.
1609년 갈릴레오는 경이로운 밤하늘을 직접 제작한 망원경으로 관찰한 후 이렇게 말했다. '그토록 긴 세기 동안 어둠 속에 감추어져 있던 기적을 저로 하여금 처음 보게 해주신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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