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상덕의 대중문화엿보기-바닥 드러낸 방송소재

1986년에 나온 미국영화 '나인하프 위크'는 뉴욕의 여피족을 자처하는 미키 루크가 킴 베신저를 만난 9주 동안의 섹스 행위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남성은 여성을 거실 바닥에 개처럼 기어다니게 하고 채찍으로 등을 때리기도 하다가 마치 무생물인 인형을 다루듯 목욕을 시켜주고 의상을 입혀주거나 남자 옷을 입게 하는 등 전형적인 세도 매저키즘 증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감독인 아드리안 라인은 이 영화의 극중 주인공들의 행동은 '점차 기계화되고 인간성이 말살된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마지막으로 탐닉하게 되는 것이 바로 돈과 여자이다'라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라면서 '온갖 변태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극중 남자 주인공의 심리는 바로 인생을 걸만한 탐험의 대상을 상실한 현대 남성들의 초라한 초상이다'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TV방송 3사의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자를 위해 걸만한 소재를 소진한 것처럼 보인다. 지난 일요일 KBS2의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의 공익성을 앞세운 포맷인 '99초 광고제작 스탠바이 큐'는 스타가 도전하는 광고제작의 전 과정을 공개한다는 방송사의 안내와는 달리 시청자의 눈에는 장애물 릴레이 경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떡을 치고 뛰어가고 떡을 받고 말뚝박고 투호하고 다듬이질하고 떡방아 찧고...기이한 것은 NG가 나면 다시 처음부터 되풀이하여 15회나 반복하는 방송사의 친절(?)이다. 물론 시청자는 같은 장면을 똑 같은 횟수로 시청해야 하는 인내를 지녀야 했다. 한국가정의 주말 오후 7시대 채널권의 60%이상은 3세에서 12세사이라는 통계가 있다. 때문에 아이가 보니까 엄마가 보고 아이와 아내가 보니까 덩달아 아빠가 보기 때문에 우선 아이 기준에 맞게 코너를 구성할 수도 있다. 문제는 아이도 짜증내는 TV오락프로라는 사실이다. 쇼는 무엇보다 '즐겁고 신나고 재미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 다음이 공익성이다.

지금 우리나라 쇼의 대부분은 출연자의 애드립에 의존한다. 그래서 '키스를 언제 했느냐?''여성과의 스캔들은 사실이냐?'가 질문이다. 그러나 이제 성(性)도 한물 간 유행이 된 듯하다. 립싱크를 하지 않고는 춤을 출 수 없다는 차태현이 국민가수로 인정(?)받고 '막가파'식 TV 쇼만 판을 친다. 미국의 프로레슬링은 짜고 하는 경기지만 쉽게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관중의 기대성을 저버리지 않는다. 우리의 쇼도 시청자의 기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의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대경대 방송연예제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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