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상걸린 포철, 현장을 가다

"원-달러 환율은 1천316.2원, 연초 대비 3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4%, 현재의 경기 상황을 나타내는 경기 동행지수는 99.2(작년 12월)에서 97.7(지난 2

월)로 하락, 6개월 뒤의 경기 상황을 예고하는 선행지수는 2.0%(작년 10월)에서 -1.9%(지난 2월)로 추락…".

13일 포항제철 사내 전산망에 게시된 경기 지표이다. 같은 날 유상부 포철 회장은 과장급 이상 간부 운영회의에서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환율 상승과 철강재 시황 악화로 가격이 폭락하는 등 수익성이 악화됐다. 에너지 비용, 정비비, 물류비에 중점을 둔 긴축경영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라".

◇IMF사태 때 보다 더한 상황

포철에 게시된 경기 지표는 무거운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의 경기도 나쁘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더 어둡다. 물가는 오르고 원화 약세로 인한 환차손은 더 커질 것이다"는 것. 제품 만들기도 힘들지만 만들어 봤자 팔기는 더 힘들고, 채산성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우리 경제의 지금 상황을 집적해 보여 주는 것이다.

철강 산업은 이런 경기 상황에 직결돼 있다. 조선.자동차.건설 등이 잘 안되면 철강이 많이 팔릴 수 없는 것. 국내에선 조선에 이어 두번째 큰 철강재 수요 산업인 자동차 산업 경우, 작년 한때 반짝경기를 타는듯 했으나 올해는 다시 곤두박질 치고 있다. 지난 1∼2월 두달 간의 국내 자동차 총생산량은 41만9천대. 작년 보다 11.7%나 줄었다. 건설업은 장기 마이너스 성장으로 이제는 회복 기대 조차 사라지고 있을 정도.

타격은 철강 산업에도 당장 닥쳤다. 같은 기간 포철 생산품의 내수(552만2천t)는 작년 보다 8.2%나 줄었다. 생산 역시 5.6% 감소했다.

철강 경기 하락은 세계적으로 비슷한 상황이다. 세계 조강 생산 증가율은 19개월만에 처음으로 지난달 감소세로 돌아섰다. 철강재 가격은 '붕괴'로 묘사될 만큼 폭락했다. 어느 한가지에도 희망을 섞어 넣을 수 없는 지경. 입사 20년차인 포철 장성환 차장은 "IMF사태 때 보다 더 혹독한 불황"이라며, "해답 찾기가 우리 능력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했다.

◇환율 불안 '피니쉬 블로'까지

소비가 침체된 아주 나쁜 상황에서 닥쳐 온 환율 불안은 그로기 상태의 권투 선수를 더욱 힘들게 하는 '피니쉬 블로'의 역할을 했다.

포철은 올해 경영 계획을 세우면서 환율을 1천150원 정도로 잡고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의 환율은 1천300원을 계속 웃돌고 있다. 이는 현지 가격 조차 오름세에 있는 철광석.석탄 등 원자재 도입 비용을 폭증시켰다. 환율이 10원 오를 때 마다 200억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할 정도.

포철 원료1실 윤기목 과장은 "제품 가격은 하락하고 있지만, 전량 수입하는 철광석 등 원료값은 평균 4.3%나 올랐다"고 했다. 이때문에 포철도 환차손 최소화에 이번 비상경영의 초점을 맞췄다. 재무예산팀 임승규 과장은 "17억8천만 달러에 이르는 달러 표시 부채를 가능한 한 줄이기로 하고, 2억8천만 달러 규모의 단기부채는 만기 즉시 상환하며 장기 부채도 점차 갚아 총 부채 중 외화 부채 비중을 65%에서 53%로 낮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포항 경제엔 어떤 영향?

포항지역으로서는 포철이 생산량.인원.지출 등을 줄이는 것을 가장 주목할 수밖에 없다. 지역 경제와 직결되기 때문.

그러나 포철 측은 "현단계에서 감산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공언했다. "판매 다변화,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긴축 경영 등을 동원해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라고 관계 부서에서는 말했다.

판매 다변화와 관련해 시장 개척팀에서 근무하다 최근 PI(업무혁신)실 e세일즈팀으로 옮긴 김정철 대리는, "일본.중국.동남아 등 기존 시장 외에, 중남미.중동.서남아 등 원거리 미개척 시장에 승부를 건다는 게 현재 마케팅의 기본 방침"이라고 했다.

긴축 경영 방침은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포철 초기의 경구가 30년만에 되살아난 것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접대성 경비 등을 최소화 하는 것은 물론, 절전·절수, 전화비.문구류비 아끼기까지 이미 제시돼 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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