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마늘분쟁이 재연되면서 정부의 통상정책 조정능력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수출은 날개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수입개방 압력은 갈수록 거세지는 위기국면에서 부처간 통상정책 조정은 오간데 없고 무책임한 아이디어성 발언만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대외협상력은 물론 국가신뢰도 마저 실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장은 땜질식 처방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현재의 통상정책과 조직을 근본적으로 '구조조정'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마늘분쟁은 계속 이어지리란 목소리가 정부내에서조차 높아지고 있다.
◇통상교섭본부 역할한계론=정부내 '통상사령탑'의 역할을 맡고 있는 통상교섭본부는 각 부처의 통상정책 조정과 지원기능을 거의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통상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수시로 대책회의는 주재하지만 합리적 해법제시와 추진력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부처간 불협화음만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번 마늘분쟁의 경우도 이미 한달전부터 마늘 수입부진에 따른 통상마찰 경고음이 울렸는데도사전 대응책 마련이 소홀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특히 실물부처인 산자부와 농림부만 총대를 메고 통상교섭본부는 한발 빼고 있는 듯한 양상이다.
통상교섭본부와 실물부처 통상부서 사이의 갈등도 적잖다. 특히 최근들어 통상업무와 관련성이 높은 산업자원부와 잡음이 커지고 있다. 우선 통상업무의 기초인정보교환조차 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3일 열린 한.EU 철강협의회 회의결과전문을 소관부처인 산자부에 보내지 않았다가 항의를 받고는 열흘이 훨씬 지난후에야 전문을 발송했다는 후문이다. 또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3월 방미기간 미국 상무장관과 만났을 때 상무장관이 4년전 설치된 한미기업협력위원회(CBC)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김대통령은 이를 사전에 보고받지 못한채 CBC 설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정부관계자는 전했다.
◇검증안된 아이디어 남발=최근 불거진 '현대자동차의 미국차 수입대행' 아이디어나 마늘분쟁 해법의 하나로 제시된 '폴리에틸렌.휴대폰 수출업체의 마늘수입'방안은 통상정책 혼선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우선 진념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현대차 수입대행 발언을 한 이후 재경부는 경제부처 실무회의를 소집, 후속대책을 논의했지만 관계부처 실무자들 조차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둘러싼 이견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국내 특정업체에 수입차대행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수출업계에 대한 마늘수입요구도 한.중 통상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설정이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고 재계는 지적하고 있다.
◇통상조정기능 재수립해야=정부 안팎에서는 각 부처의 통상정책 조정기능이 시급히 재정비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각 부처에서 발생하는 각종 통상현안에 대해 보다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부처간 이견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의 힘이 강하다고 마늘을 사주면 칠레 등 나머지 국가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하느냐"며 "일관성있고 균형감을 갖춘 통상비전 제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 통상교섭본부의 기능과 위상도 이런 방향에서 재검토돼야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