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흐르는 물

며칠전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려 팍팍한 대지를 촉촉하니 적셔 놓았다. 내린 비로 나무와 꽃, 흙에 물기가 배어 생기가 돋아나고, 온갖 새들은 목청껏 노래한다. 덩달아 마음이 싱그러워졌다. 그동안 가물어 들리지 않던 개울물 소리가 귓전을 잔잔히 울려 집 아래에 있는 개울가로 내려가 보았더니 물소리가 한결 청아하다. '졸 졸 졸' 흐르는 물가에는 벌써 버들강아지가 봉긋이 맺혀 있다. 푸른 버들강아지를 바라보면서 문득 아련한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버들피리 만들어 삘리리 불어재끼며, 동무들과 한없이 즐거워하던 그 때를 떠올리니 입가에 미소가 싱긋 지어진다.

면경처럼 맑은 물에 마음이 빼앗겨 신고 있던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봄 햇살에 따뜻하게 데워진 바위 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고, 맨발을 물속에 들여놓았다. 아직 차가움이 가시지 않아 시린 느낌이 발에 전해졌지만 이내 차가움은 가시고 부드러운 물의 감촉이 발가락사이로 전해진다. 맑고 투명한 물 속에는 버들치, 피리 등 민물고기들이 잠깐 경계를 멈추고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시나브로 명상에 잠겼다. 물은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끝도 없이 도도히 흐르는 물은 때로 바위에 찢기면서도 변하지 않고, 더러 인간이 저질러 놓은 이물질을 깨끗이 떨쳐내는 만물의 근원이다. 하지만 이런 물도 고여 버리면 그 맑음을 잃고 썩지 않는가.

이런 물의 삶에서 인간의 삶도 하나의 흐름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삶의 틀에 갖혀 안주하다 보면 고인 물처럼 생기를 잃기 마련이다.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순리대로 흐르는 물 앞에서 필자는 인간의 연약함과 침묵의 의미를 배웠다. 지금 나는 고여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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