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문열의 귀거래사(?)

어릴때 키를 재던 향나무가 저만큼 커버린 옛집, 여름 무더위를 쫓으며 책을 읽던 석천서당, 그 뒤편 광려산 자락 170평 새 집에 들어앉은 소설가 이문열(53). 봄낮 뻐꾸기 소리에 귀향의 뿌듯함도 잠시, 긴밤 소쩍새(歸蜀道) 울음엔 까닭모를 허망감에 뒤척이곤 한다.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고향 두들마을에 세운 광산(匡山)문학연구소. 반세기만에 강마(講磨)와 연거(燕居)를 겸한 새 둥지를 틀면서 작가는 이제사 고향이란 시간과 공간을 오롯이 회복했다.

그런데 그 허망함이란, 고향을 출발점으로 한 '한살이'를 마감했다는 관념 때문일까 . 작가는 그러나 이곳이 '또다른 한살이의 출발을 위한 열려있는 포구'라고 자위한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변경' 등 숱한 작품 속의 '나'와 작중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펼쳐지는 무대, 고향. 여기에 세운 문학사숙(私塾). 광산문학연구소는 그래서 3년전 경기도 이천에 문을 연 '부악문원'과는 의미가 또다르다.

"커리큐럼도 없고 어떠한 의무나 감독도 없습니다. 강마의 공간이지 강의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젊은 작가들의 순수 창작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작가 자신도 '부악'과 '광산'의 역할 배분과 비중 부여를 두고 아직은 고민이 많다.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디지털문화의 출현이란 시대적 상황도 고민의 한몫을 더한다.전환기적 시점일수록 더욱 전통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면 광산에 머무르며 생산활동에 주력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세계를 겨냥한 문학적 야심도 없지 않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메이저 출판사를 통해 번역.출간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보듯, 전통과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해외 독자들까지 염두에 두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보면 고향에 눌러 앉을 일만도 아니다.

최근 몇년간 내놓을 만한 작품도 없이 오랜 고민과 모색을 거듭한 끝에 밝혔던 "새로운 독자 만들기에 연연하지 않고 내 독자와 함께 늙어가겠다"던 입장에서도 한발 물러섰다. 작가로서 솔직히 젊은 독자들의 이해도 구하고 싶은 욕심이다.

"쓸만한 세월은 한정돼 있고, 마음은 초조하고, 세계화도 중요한 과제이고...". 70년대까지를 담은 '변경'에 이어 80년대를 정리한 작품의 양식을 두고 생각 중이라는 작가는 '국제용 문학추구'라는 상반된 화두를 두고 또 번민하고 있다.

영남 사림가문이었던 전통 고가로의 귀거래(?). 그러잖아도 '보수적이다 우파적이다'란 비판들과 함께 '작가가 글을 쓰지 않고...'란 곱잖은 시선들이 부담을 더한다.

그러나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이다. 해질녘 누각에 앉아 석양에 취한 작가 이문열, 그는 지금까지의 실험적인 글쓰기가 말해주듯 또다른 비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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