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제협상때 저렇게 치밀했더라면

한갑수 농림부장관이 10일 오전 10시쯤 구미 원예수출공사를 방문했다. 장관이 탄 헬기가 도착하자 농민회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피켓을 흔들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휴대전화로 얻은 이익금 마늘 농가에 환원하라" "개방 농정 갈아 엎고 민족농업 사수하라". 구미.의성.상주 농민회 회원 50여명은 장관에게 중국산 마늘 수입 등 농정 부재를 따지러 몰려와 있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한 장관은 차관보 등 수행원들과 함께 화훼수출공사를 대충 한바퀴 돌아본 뒤 곧바로 농민단체 대표들과 간담회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바로 앞에 앉아 있던 농민이 고함을 쳤다. "농림부 장관은 정부의 농정 실패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다. 이를 인정하고 물러 갈 용의가 없느냐?" 또다른 농민도 다그쳤다. "의성.영천의 마늘, 경주의 생우 수입 등으로 유독 경북지역이 시끌벅적하자 알량한 전시 행정으로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 아니냐?"

답변 도중 한 장관은 농민들의 심정을 알아 차렸다는 표시를 했다. "오늘 농민 여러분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혹시 계란 세례라도 퍼 부을까 봐 옷을 따로 한벌 준비해 왔다". 계란세례에 대비한 사람은 장관만이 아니었다. 경찰도 마찬가지. 체격이 우람하고 유단자들이라는 근접 경호조 10여명도 계란세례를 우려해 대형 우산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경찰은 전경은 물론 강력계 형사들까지 동원, 물샐 틈 없는 경호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강력계 한 형사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기소중지자 검거 실적이 부실해 밤낮 안가리고 뛰어 다녀야 할 형편인데, 백주에 그것도 대통령도 아닌 장관 경호에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서야 되겠느냐?"

어쨌든, 장관이나 경찰이나 이날 보인 준비성은 참으로 기묘했다. 이러지 말고, 국제 협상 때 그렇게 치밀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구미.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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