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스승없는 스승의 날

촌지 시비를 없애기 위해 스승의 날 휴교한다는 뉴스가 눈에 띈다. 선생은 있어도 스승이 없다는 시대이니 스승의 날 휴교는 당연할 텐데 말이다. 스승을 두고 '군사부일체(軍師父一體)'니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등의 신화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로 스승은 아버지와 같이 엄하게 교육을 하는 입장이라는 뜻이고, 더 나아가 스승을 부모보다도 더 위로 알고 존경한다는 말이다. 그때 우리 사회는 산업화 초기의 배고픈 시절이었고 선생님은 우리사회에서 외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면서 갈수록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그 속에서 선생님들은 교직에 대한 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교권살해시대의 선생님들

교사가 의욕을 잃으면 결국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밖에 없으니 걱정이다. 선생님들이 제자리를 찾아야 교육도 살아날 것인데 교사들의 의욕과 사기를 되찾을 수 있는 방안 마련이 그렇게 쉽지 않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교실붕괴, 교권추락으로 몸살

사회학자들은 페미니즘이란 이름으로 여권이 태풍으로 불어오기 훨씬 전에 '부권살해시대'(父權殺害時代)라 하여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지고 있음을 경고한 바 있으며 궁핍하던 시대 경제권을 갖고 있던 시절의 엄친자모는 교육과 경제권이 어머니쪽으로 이관되면서 자친엄모(慈親嚴母)로 바뀌었다. 종래의 부권(父權)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군사부일체에서 부가 없으니 군도, 사도 없게 되니 군사부일체는 이제 박제된 말이 되고 만다. 어찌 스승이 있겠는가. 그런데 웬 스승의 날 타령인가.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논리가 어느 틈에 스승의 날에도 자리하고 있다. 개혁을 부르짖으며 한편으로 개혁피로를 염려하는 요즘의 정가나, 교실붕괴와 교권추락으로 몸살 앓고 있는 교단의 스승의 날을 즈음하니 노자(老子)의 혜안이 놀랍다.

'노자' 18장은 세상의 습속이 천박해진 상태를 속박(俗薄)이라는 제목을 붙여 설명하기를 지혜가 생겨나면서 대단한 거짓이 존재하게 되었고 집안 사람들이 친화하지 않게 되자 효도와 자애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국가가 혼란하여지자 충신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하고 있다(知慧出, 有大爲. 六親不和, 有孝子. 國家混亂, 有忠臣).

기성세대가 '스승섬기기' 모범을

아무리 훌륭한 덕목이라 하더라도 인위적인 것이란 모두가 자연스런 사람의 본성에서 어긋나는 좋지 못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스승의 날에 감사의 뜻을 가르치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 두는 게 낫다. 어른들은 감사의 뜻을 반드시 물질로 표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자. 얄팍하게 촌지를 드리거나 아이들에게 카네이션을 들려 보낼 것이 아니라 어른들 '당신'들이 먼저 은퇴하였거나 병고에 혹은 외로움에 지친 당신들의 은사를 찾는 모범을 보이라. 그러면 아이들은 저절로 스승 섬기는 마음을 배울 것이다.

스승의 날이 바닥에 떨어진 도덕과 윤리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도록 어른들이 그들의 스승을 찾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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