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새로운 시간과의 만남은 위도 38도선을 한참 지난 진부령에서였다. 어둠 속의 차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첫 음악은 낯선 북한방송의 행진곡이었고, 잡음을 피해 누른 첫 테이프 음악은 안치환이 건조한 음색으로 절규하는 자유 평화인간의 노래였다.
동해의 떠오르는 첫 해를 쫓아서 구비 구비를 내려 달리는 진부령 계곡의 여명(黎明)은 화선지 필묵처럼 점점 엷게 번져가고, 바다로 흘러들면서 섬세해지는 산천과 작은 마을의 새벽연기, 아득히 펼쳐지는 설악의 은빛 능선, 높은 고갯길 올라서니 갑자기 전개되는 망망대해-, 검푸름 이후 시간의 속도에 따라 황홀하게 변신하는 일출-, 새 아침의 감동은 아직도 선연한 새로움으로 가슴에 묻어있다.
문득문득 낯선 길에서 마주치며 느꼈던 새로움과 감동을 되새김하는 것, 그것은 구태의연한 생활에 활기와 또 다른 새로움을 덤으로 준다. 쉽게 도시를 떨치고 낯선 새로움을 찾아서 내달릴 수만 없는 일상이다. 그래서 무심결 지나쳐 버리는 주변과 도시의 언저리에서라도 무언가를 찾기 위한 애정의 눈길과 사소함에도 감동하려는 작은 마음을 준비하기로 했다.
업무차 매주 왕복하던 고속도로의 휴게소 뒤 켠 낯선 언덕, 넓은 강이 펼쳐져있는 느티나무 아래에서의 커피 맛과 스케치북을 펼치는 새로운 공간과 시간으로 1년여의 출장길은 항상 가슴이 설레었다.
시간에 쫓겨 달리기만 하는 동안(東岸)도로, 무인카메라 탐색의 시선을 거두고 보면 도시의 새로운 실루엣- 낯섦과 새로움이 보인다. 항상 보아왔던 건물과 앞산을 낮은 시점 다른 앵글에서 비켜보는 새로움이 있고, 석양 무렵 역광으로 나타나는 차창 화폭엔 볼품없는 것과 초라함이 생략된 아름다운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있다. 밤의 야경과 물의 반영(反影) 또한 과거 없었던 정경이다.
옛날 서거정 선생이 찬미했던 '대구 10경'이 사라진 지금, 새로운 '신 대구 10경'도 있지 않을까? 이 땅에는 아직도 설레는 낯섦과 눈뜨지 못한 새로움으로 충만하니까.
건축가.경운대 겸임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