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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라운드 10년 우리농업 어디로 가고있나(2)농산물 가격구조의 함정

근래 농촌에서는 한 특이한 현상이 일반화됐다. 1970년대만 해도 큰 부자라 불렸을 중농들이 인근 농공단지 등의 공장 인부로 몰려가고 있는 것. 복잡한 사연이 뒤에 깔려 있지만, 결국은 몰락해 가는 우리 농촌의 현실을 말하는 한 풍경임에는 틀림 없어 보였다.

◇외국 수입품이 만든 천정

외국산 수입 개방 후에 우리 농산물에 새로 생긴 가장 결정적 굴레는 가격에 천정(天井)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판별해 냈다. 얼른 들으면 어려워 보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 치열할 수 없는 표현. 양파를 예로 들어 보자.

수입이 안될 때는 어쨌든 시세가 국내 사정에 따라 결정됐다. 어떤 해에는 너무 풍년이 져 값이 폭락하면 많은 농민들은 양파를 그냥 갖다 버려야 했다. 그러나 흉년이 들거나 혹은 시절을 잘맞추기라도 하는 해에는 값이 다락같이 올라, 몇해 동안 손해 본 것까지도 만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작황이 아니라 시세가 걱정" "흉년 드는 것이 오히려 득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돌았었다.

그러나 수입이 개방된 뒤에는 이런 일은 아예 일어나길 기대하기 조차 불가능하게 됐다. 흉작으로 조금 값이 오를만 하면 곧바로 수입해 버리기 때문. 외국산 가격선이 바로 우리 농산물 값이 오를 수 있는 상한선이 돼 버린 것이다. 이것이 전문가들이 말하는 '천정론'이다.

물론 하한선은 있을리 없다. 국내산 값이 폭락한다고 해서 외국이 수입해 감으로써 값을 올려 줄리 없기 때문.

영천에서 30년 동안 양파·마늘 장사로 지내 온 정대만(57·신녕면 화성리)씨는 "농민 상인 할 것 없이 이제는 전처럼 때 한번 잘 맞춰 큰 돈 벌던 시절은 영영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외국산의 값이 국내산의 몇분의 1밖에 안되니, 결국은 국내산의 값 '천정'조차 자꾸 밑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다. UR 타결 전에 비교한 바에 따르면, 외국 쌀 값은 우리 것의 6.7분의 1에 불과하고, 참깨는 11분의 1, 콩은 5.6분의 1, 쇠고기는 4분의 1에 불과했다. 68개 주요 농산품 중 사과·배 등 13개 품목에서만 우리 것이 유리했을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와 나타난 결과가 가격 폭락. 1접당 1만원안팎까지 하던 마늘은 3천원 밑으로 떨어졌고, 좋은 시절 1망(20kg)에 2만원선, 지난해에도 6천~7천원 하던 양파 값은 지금 4천원도 안된다.

◇농사 수입으로는 생계가 안된다.

비슷한 시기에 부상한 또하나의 특징은, 농부들이 농촌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뀐 것이었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가장 큰 이농 이유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이 드디어 "생계가 안돼서"로 바뀌었다. 자녀 교육 문제야 해결할 다른 길도 찾을 수 있을 터이지만, 문제가 돈에 걸리면 누구도 말리기 힘든 상황이 되는 것이다.

농부들은 이유를 명쾌히 계산해 보였다. 예를 들어 논 20마지기를 농사 짓는다면 종전에는 제법 부자로 불렸었다. 그러나 지금 거기서 나오는 쌀은 잘해야 1천여만원 어치에 불과하다고 했다. 때문에 고추·양파·참깨 등 농사로 돈을 만들어 왔으나, 수입 개방 후에는 그런 것조차 제대로 돈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영천시 신녕면 허정근 면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지난해에는 300평당 4천800kg의 양파를 생산해 kg당 300원씩 144만원을 받았지요. 영농비 90만원으로 빼면 소득이 54만원쯤 됐습니다. 올해는 가격이 200원으로 떨어져 300평 총 소득이 100만원에 그칩니다. 그러나 영농비는 올라 100만원에 달했습니다. 뭐가 남겠습니까?"

농촌경제연구원의 국제무역 분야 이재옥 선임 연구위원은, "우리 농촌이 어려운 것은 농사로는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점"이라며 "농사도 장사인데 이익은 안남고 들어가는 것은 많아지니 그만 둘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분석했다.

◇부농들까지 공장으로 공장으로

상황이 이렇다면 농부들이 그 다음에 뚫을 수 있는 활로는 무엇일까? 영천시 신녕면 매양1리 박영진(44) 이장의 경우가 좋은 예로 보였다. 박 이장이 짓는 농사는 양파 2천평과 마늘 600평. 물론 그 땅에서는 벼농사도 한다. 이 정도만 해도 결코 적잖은 규모이다.

그가 지난해 이것 저것 합쳐 벌어 들인 총수입은 2천500만원 정도. 그러나 영농비, 중고생 자녀 교육비, 의료비 등으로 쓴 돈은 2천900여만원. 농사만으로는 지출조차 감당하기 힘든 수지였고, 그때문에 5천만원의 빚은 빚대로 남아 있다.

이런 박 이장 가정에서 활로를 찾겠다고 나선 사람은 부인(39)이었다. 작년에 인근 공장에 취직한 것이다. 받는 돈은 한달에 65만원 정도. "농사만 바라 보고 있어서는 살기 어렵습니다. 가족 중 누구라도 품앗이든 공장이든 돈을 벌어야 지탱이나마 할 수 있습니다".

박 이장은 자기 가정뿐 아니라, 300여명 마을사람 중 50, 60명이 농사 외에 공장 일 등으로 생활비를 보태고 있다고 했다. 60, 70 넘은 노인들조차 품앗이에 나선다는 것. 유명 제과회사의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도해희 영천 시의원도 이런 점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80여명의 직원 중 10여명이 낮에는 농사 짓고 밤에 시간제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근무를 희망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 이제 일반화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3천500평에 양파·마늘 농사를 지으면서도 빚이 4천만원이나 된다는 박정호(49·신덕2리)씨. 작년에는 면 농업경영인 회장을 맡기까지 했다는 그 역시 "살길 찾아 공장으로 가든지 해야지…"라며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부업 전선에 뛰어 드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편이라고도 했다. 빚 때문에 부도를 내거나 몰래 고향을 등진 사람이 적잖고, 그들을 위해 연대보증을 섰다가 또다른 많은 사람들까지 낭패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함정에서 내지르는 울분

서울생활 3년을 빼고는 고향에 묻혀 지냈다는 박 이장은 "이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차라리 양파 밭을 갈아 엎어 버리고 싶다"며 집앞 양파 밭에서 양파를 뽑아 패대기치기까지 했다. 1998년에는 값이 폭락해 한우 14마리조차 헐값에 팔아치워야 했다는 그의 얼굴에서는 절망의 어두움과 분노가 교차하는듯 했다. "양파마저 이 모양이면 이제 무슨 농사를 지어야 합니까?"

신녕면 곳곳에는 중국산 마늘 수입을 규탄하는 플래카드, 농민대회를 알리는 포스터, 얼마 전 트랙터로 갈아 엎어 텅 비어버린 마늘밭 앞의 펄럭이는 절규만이 펄럭이고 있었다. 마치 함정에 빠져 더 이상 활로를 못찾아 울부짖는 사자의 울음소리 같았다.

그러나 다가 올 더 큰 위협은 아직도 도사리고 있는듯 하다. 싼 값을 앞 세운 중국 농산물의 무차별 공격은 무서울 정도여서, 농림축산물 수입액이 1995년 6억3천7천만달러에서 97년 12억7천500만달러, 2000년엔 14억50만달러로 폭증하고 있는 것이다.

농림부 국제협력과 WTO 2계 박수진 사무관은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 양념채소류를 중심으로 한 저가농산물의 수입으로 더 많은 피해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그렇잖아도 이미 중국산 작약 홍수로 의성에서는 14년간 이어져 오던 작약꽃 축제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서종일기자 jise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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