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발끝까지 멍이 들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운 초등학생. 집에서 쫓겨나 폐차장 구석에서 잠을 자는 어린이. 분유대신 고춧가루 탄 물을 먹고 자라는 갓난 아기….
아동학대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경제난에 따른 생활고로 짜증만 늘어가는 부모, 폭행을 훈육으로 착각하는 부모까지 아이들에 대한 폭력행사와 정서적 학대를 서슴지 않고 있는 것.
지난 해 10월 문을 연 대구시아동학대예방센터(아동학대 신고전화 국번없이 1391)에 비친 아동학대 실태를 들여다봤다.
◇학대가해자 절대다수가 부모
초등학생 동수(가명)는 아버지의 화풀이 대상이다. 가출한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증오가 동수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막일을 하는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동수를 때린다. 머리는 쇠파이프에 찍히고 온몸에 둔기로 맞아 생긴 상처가 가득하다. 의료보험도 없는 동수네 집. 동수는 맞아서 찢긴 상처가 있으면 집에서 꿰맨다.
수년간 이어진 아버지의 폭력. 이웃의 신고로 동수 아버지는 경찰에 입건됐지만 학대를 받는 과정에서 생긴 어린 마음의 상처는 가시지 않고 있다.
이웃이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부모들도 아동학대를 하는 일이 적잖다. 이들 부모는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들과는 달리 집요한 정서적 폭력을 계속한다.희영(6.가명)이 아버지는 툭하면 희영이를 아파트 베란다로 끌고 나간다. '말을 듣지 않는다'며 희영이의 다리를 잡고 떨어뜨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희영이는 아버지의 눈빛만 스쳐도 가슴이 저린다.
대구시아동학대예방센터가 올들어 처리한 아동학대사건 43건 가운데 90%인 39건의 가해자가 부모다. 부모이외에는 조부모.친인척 등이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자. 학대예방센터에 따르면 학대 가해자는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많다.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변화'가 절대적인 셈이다.
하지만 학대를 하는 아버지들은 좀처럼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내 아이를 내가 때리는데 감히 누가 간섭하냐'는 식이다. 울어도 계속 때리는 아버지. 가정에서 아이들의 공포는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학대하나
물리적인 폭력이 아동학대의 가장 두드러진 전형이다. 올들어 대구아동학대예방센터에 접수된 사건 43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5건이 신체적 학대였다. 신체적 학대에는 물론 욕설이 수반된다. 욕을 하면서 주먹이나 둔기를 휘두르는 것이 가해자들의 일반적 태도.
최근에는 '방임'이나 '정서적 학대'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초등학생인 정필(10.가명)이 3형제는 1주일에 서너번은 바깥에서 잔다. 아버지가 술만 마시고 들어오면 욕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며 집밖으로 내쫓기 때문이다. 정필이 형제들은 주차장에서 자기도 하고 폐차장 구석진 곳에서도 밤이슬을 피한다.쫓겨나면 배고픔이 가장 큰 고통이다. 이 때문에 자주 집에서 쫓겨나는 아이들은 도벽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아동학대예방센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난 봄 대구아동학대예방센터 관계자들은 3남매가 기거하는 한 가정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부모의 무관심으로 갓난 아기가 우유도 먹지 못한채 고춧가루가 든 물을 먹고 있었고 화상을 입은 곳이 많은데도 치료도 못받은 상태였다. 아이들의 발에는 동상까지 찾아들고 있었다.
이웃들에 따르면 아이들 아버지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고 어머니마저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모두가 감시자가 되자
아동학대예방센터는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이웃들의 감시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남의 가정일에 끼어들기를 꺼려한다는 것.
게다가 이웃들은 웬만큼 아동학대가 심각한 상황이 아니고는 발견하기 힘들다. 학대받는 아이들을 발견하기 가장 쉬운 위치는 교사들이라고 학대예방센터 관계자들은 주장한다.
"학대를 받아 센터로 들어온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미 학교 선생님들이 학대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교사들이 부모를 신고하기가 쉽지 않답니다. 무엇보다도 '보복'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교육자들이 이를 두려워한다면 아동학대는 영영 사라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너무 많이 맞아 온몸에 피멍이 드는 바람에 학교 교장선생님까지 이 사실을 알았지만 신고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대구아동학대예방센터 이정아팀장은 선생님들이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주길 주문했다.
이웃들이 아동학대를 막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최근 계모가 아이를 학대한 사건의 경우,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여 계모에 대해 '아이를 잘 키우라'며 관심을 가진 결과 이 가정은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아동학대예방은 아이들에 대한 당장의 폭력을 막는다는 소극적 의미뿐만 아니라 학대받은 아이들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지 모르는 폭력의 재생산을 근절한다는 큰 의미를 갖는다고 예방센터 관계자는 설명한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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