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 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박두진 '道峯'

도봉산 등산을 하면서 시인이 1930년대에 쓴 시로 알려지고 있다. 삶에 대한 기다림과 쓸쓸함을 드러낸, 정신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시이다. 30년대라는 시대 상황은 종종 이 시를 조국 해방과 연결해 읽히게도 한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읽기의 방법을 벗어나 실존적 존재의 고민에 대한 시로 이해해도 좋다.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이라는 구절은 가을산 어스름에 앉은 누구에게나 한번쯤 떠오르는 진한 인생의 페이소스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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