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으며, 날로 악화의 길을 걷고 있다. 문단의 내부적인 문제도 적지는 않으나 외부적인 요인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시장 논리가 적용되면서는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패거리 의식이 진정한 문학을 멍들게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새로운 언어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널리 알려져 있거나 잘 팔릴 가능성이 있는 문인들만 문학적 성취도와는 상관 없이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는 악순환도 거듭되고 있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문학외적인 작용이다. 정치 논리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경우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반정치적'이라는 사실은 상식이다. 기왕에 구성돼 있는 세속적 권력엔 관심이 없는 영혼의 야심가들이 펼쳐내는 작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문학의 본질이나 특성과는 무관하게 정치 논리가 끼어들어 찬물을 끼얹고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마저 없지 않기 때문이다.
17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의 최재승 의원(문화관광위 위원장)이 '통일문학전집'에 '소설가 이문열씨의 작품은 수록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어이없는 발상은 그의 인문적 자질과 의식 수준을 의심케 할 뿐 아니라 명백한 월권이다. 문학을 정치인의 사시안적인 잣대로 마구 재단한다면 온전한 문학이 살아 남을 수 있겠는가.
문학적 성취도를 차치하더라도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폭넓게 받고 있는 대표적인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인 이문열씨를 그렇게 짓밟는다는 것은 작가에 대한 인격 모독을 넘어서서 그의 문학을 아끼는 사람들까지 함께 매도하는 일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문예진흥원이 모두 100권(남북 각 50권)으로 기획, 2002년 하반기부터 출간할 예정인 '통일문학전집'은 3년 전부터 전문 학자들의 자료 조사와 연구, 사계 전문가들의 토론, 설문조사 등을 거쳐 수록할 작품들을 모두 선정해 놓은 상태다. 그렇다면 최 의원은 속이 들여다 보이는 정치 논리로 전문가들마저 모두 '바지저고리'로 만들 셈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문열씨가 현 정부에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해서 개혁을 방해하고 민주화를 가로막으며 평화통일을 저해하는 '제2의 이광수'로 빗대는가 하면, 오보로 밝혀진 임수경씨에 대한 폭언 문제까지 들고 나와 매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창작의 자유를 유린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주장이나 지향점과 다르다고 파당적인 기준으로 한 지식인을 '반민족·반통일·반민주'로 몰아붙이면서 편가르기를 한다면 수긍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도 알고 싶다.
이문열씨는 어떤 시대에도 자신의 소신이 뚜렷하고 한결같았으며 변절한 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그를 단순히 밉다고 해서 '반통일 곡필 작가'로 매도하는 것은 폭력이요, 망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구나 '통일문학전집'은 남북한의 문학을 집대성, 분단 이후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기 위한 방대한 작업이지 않은가.
이 전집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부터 2000년 12월 31일 현재까지 남과 북에서 발표된 대표적인 작품들을 집대성, 남북한 공히 소설 35권씩, 시 5권씩, 희곡 5권씩, 문학평론 5권씩으로 구성될 예정으로,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기념비적 기획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같은 민족 초유의 획기적인 작업을 두고 아전인수와 편가르기식의 정치 논리로 특정 작가의 작품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이 작업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진정한 의미의 통일문학을 훼손하려는 처사 이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문학에 대한 논의는 그 독자적인 가치와 존재 의미를 구현할 수 있는 문학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안된다. '통일문학전집' 발간이 분단 상황에서나마 통일된 민족문학을 지향하는 굳건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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