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마누라'와 여성 카타르시스
남자의 연애는 경력이 되고 여자의 연애는 전과가 된다던가.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겠다. 명절연휴는 더욱 그러하다. 한가위 연휴 첫날. 대구공항에서 중국 북경으로 향하는 전세기에는 여성의 수가 남성의 네 곱절이 넘는 듯 했다. '올해는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한숨과 '남자와 함께 오지'라는 일가친척의 집요한 관심으로부터 피신(?)하는 그들이지만 시집간 동료들은 너무 부러워한다고 했다.
명절연휴를 맞아 외국여행을 떠나는 그들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여성의 모습은 아니었다. 질서와 보호보다는 불같은 사랑을, 안정과 평화보다는 끝없는 도전을 선택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서 6·70년대 누이의 얼굴이 겹쳐졌다. 도시 방직공장에서 3교대 야근을 마친 후, 아버지의 술과 동생들의 옷가지를 챙겨들고 추석이면 어김없이 고향을 찾던 서럽던 우리들의 누이 말이다.
'조폭마누라'는 여성을 조폭 부두목으로 내세운 영화다. 여자가 담배 피운다고 욕하는 남자를 따라가 때리고, 남자 부하에게 '형님'이라 불리며, 남편과의 섹스를 자신이 결정하는 캐릭터로, 여성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또한 손가락을 입과 혀로 애무하는 원색적 섹스유머가 있고, 남편의 동사무소 동료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새는 '시방새'라는 등의 욕설이 난무한다. 그러나 마지막은 남자두목의 관대함으로 여자부두목이 살아남는 3류 신파다. 페미니즘을 강조한다며 여성을 벗기고 농락하는 만화에 가깝다.
폭력영화는 도시를 배경으로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 벌이는 괴팍스런 출세과정이나 그들 사이의 암투를 묘사하는 것이 특징. 그러나 지금 한국의 폭력영화는 이런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성'과 '폭력성'을 적당히 버무리고 있을 뿐이다. 이는 욕설과 폭력에 대해서만은 유독 관대한심의 등급판정, 읽기를 싫어하고 외화더빙에 익숙하여 번역글씨조차도 꺼리는 TV세대, 영화 제작비보다 홍보비가 더 많은 기획사가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폭력영화'가 대박이 나는 것은 조폭이 뉴스 전면에 등장하는 현실이다. 영화는 현실을 앞서지 않는다. 현실의 거울이다.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 10억원이 조금 넘는 제작비를 투자하여 하루 순수익이 7억~8억원이라면 누가 이 일을 마다하겠는가. 물론 정의가 바로 서면 이런 아류의 조폭영화도 사라진다.
대경대 방송연예제작학과 교수 sdhant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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