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값이 드디어 내리막으로 들어섰다. 정부는 세계화와 UR(우루과이 라운드) 협약을 내세우며 값 지탱이 어렵다고 발을 빼기 시작했다. 심지어 수매량조차 장담할 수 없다며 농협에 일을 미뤘다.
불가피해졌다고 받아 들이는지, 답답해진 농민들이 이번엔 농협을 점거해 작년 값에라도 사 들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농협은 농협대로 채산성을 들먹이며 안될 일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우리 사회의 기반이었고 우리 농업의 기본이자 마지막 보루인 쌀 농사마저 이제 붕괴되고 말 것일까?
쌀 농사 전망이 어두워진 뒤 농민들의 가장 큰 재산인 논마저 까딱 천덕꾸러기가 될 지경에 처했다. 쌀 농사 수입이 감소하는 것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재산 가치까지 폭락해 버린대서야 누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 상황은 불안하기만 하다.
논값은 IMF사태 이후 경제난으로 빠져들면서 거품이 빠지는 현상까지 동반하며 이미 한차례 내려 앉았었다. 그러나 최근의 형국은 폭락 양상. 그 무섭다던 IMF 때보다 더 파괴적이라고 농민들은 입을 모았다.
IMF보다 큰폭 하락
경북 최대 곡창지역인 의성 서부지역으로 가 봤다. 어지간한 한개 군 전체보다 쌀 생산량이 많다는 다인면 논들은 수리.관개시설이 잘 돼 있어 작년만 하더라도 땅을 내놓기 바쁘게 팔렸지만, 그 중에서도 좋다는 서릉리 앞들 경우 올해는 작년보다 평당 1만원 가량 값이 떨어졌는데도(3만원선) 매기가 없다고 했다.
도암1리에선 경지정리 등이 잘 된 논은 평당 3만2천~3만3천원선, 일반 논은 2만원선까지 값이 떨어져 있었다. 박기석 이장은 "이웃이 3천평을 내놨으나 값이나마 물어 보는 사람이 없다"며, "작년까지만 해도 논이 나오면 마을 안에서 매매가 이뤄졌으나 올들어서는 외지에서조차 살 사람을 못구한다"고 했다.
다인 다음으로 들이 넓은 단북면의 묵개들 논값은 지난 여름까지 평당 4만원 정도 하다가 지금은 3만원도 받기 어렵다고 농민들은 말했다. 이연1리 김진옥(67)씨는 지난 여름 평당 3만9천900원에 600평을 팔았으나 불과 몇달 사이에 값이 25% 가량이나 떨어졌다고 했다.
비안면은 한때 투기 바람이 불어 토지거래 허가제까지 발동됐던 곳. 그러나 산제리 김종진(56)씨는 "쌀값이 떨어지자 소작농마저 경작을 기피, 내년부터는 노는 논이 곳곳에서 속출할 것" "조상대대로 수백년 물려 온 문전옥답마저 내놓는 사람까지 있다"면서, "출향해 대구 황금동에 사는 김모(66)씨도 그런 논 2천400평을 내 놨으나 평당 2만원에도 살 사람이 없어 아직도 원매자를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름보다 더 떨어져
다른 곳도 마찬가지. 군위 부계면 일대 논 값은 경지정리된 농업진흥지역의 경우 평당 12~13만원 정도가 최근 5~6만원에도 작자가 나서지 않는다고 현지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말했다. 안동 풍산읍 안교들에선 외환위기 이후에도 평당 10만원 가량 하던 상답 값이 지난해 이후 7만원으로 내렸다.
주거지역으로 돼 있는 점을 고려해 1996년에 고령읍 지산리 논 1천㎡를 ㎡당 11만원에 샀다는 경주의 최모(52)씨는 "값이 이미 크게 내린데다 쌀값 하락 문제까지 터지자 7만원씩에 사려던 원매자마저 포기, 큰일 났다"고 했다. 농업진흥지역으로 돼 있는 논은 매기가 더 없어, 문전옥답이라며 ㎡당 3만, 4만원씩 하던 고령읍 쾌빈리 논은 올들어 2만, 3만원씩으로 내렸지만 원매자가 없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구매문의 완전 실종
영천의 손일남(61)씨는 "4년 전 평당 6만5천원 주고 산 화남면 신호리 도로변 논 1천여평을 팔려고 6만원씩에 내놨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시내 창성부동산 관계자는 "위치 좋은 조교동 도로변 논값조차 평당 10만원에서 7만원으로, 다른 지역은 7만원에서 5만원으로 내렸다"고 했다. 이 중개소에는 올들어 팔려고 내놓은 논 매물이 50건이나 되지만 살 사람이 없어 매매가 거의 안된다고 했다.포항의 대표적 들녘인 흥해읍 옥성리 낙원부동산 이성구(46) 대표는 "일대 진흥지역 논값은 IMF 전 평당 6만원선이었으나 그후 5만원으로 떨어진 뒤 올해는 3만5천원까지 하락했다"고 했다. 최근의 폭락세가 IMF보다 더 파괴적이라는 것. 이 사무소에도 50여명이 70여필지를 내놨지만 살 사람이나 거래는 거의 없다고 했다. IMF 이전 평당 5만원을 웃돌았던 신광면 논값도 지금은 절반인 2만5천원에 내놔도 살 사람이 없는 형편이다.
"이런 낙담 평생 처음"
예천의 논값도 5개월 전보다 평당 평균 1만원 가량 떨어졌지만 팔 사람만 수두룩하다고 했다. 지보면 도장리 김백규(71)씨는 "농사를 지어봐야 적자만 날 상황이라 평당 4만5천원까지 하던 논을 지난달 중순 3만8천원씩에 팔았다"고 했다.
김천의 김연(70.아포읍 지2동)씨는 "평균 5만원 이상하던 상답이 근래 4만원선에 팔린 뒤 다른 논들까지 값이 떨어졌다"고 했다. 상주의 노주식(72.화동면 이소리)씨는 최고 4만5천원까지 받을 수 있던 논 700평을 지난달 초 농업기반공사를 통해 평당 3만원에 팔았다고 했다. 2천, 3천평 크기의 대단위 농지 재정리까지 이뤄진 함창읍 덕동들 평당 논값도 작년 6만원하다 지금은 4만~4만5천원으로 내렸다.
들 좋기로 이름 난 경주의 한빛공인중개사 사무소 김문오(55.노서동)씨는 "서악들 논은 한때 8만원 이상에 거래됐으나 지금은 6만, 7만원 시세에도 원매자가 없다"고 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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