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사림의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척신(戚臣)세력의 독점적 권력체제에서 빚어지고 있던 정치적 혼란과 사회·경제적 피폐에 따른 국가부도 사태를 극복함과 동시에 성리학적 질서확립을 위한 개혁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필요 때문이었다. 그들의 이기심성론은 주자(朱子)의 논리에 토대를 두고 있었으나, 그들의 현실인식과 대응자세의 차이로 인해 해석상에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에 따라 사림들은 독자적으로 확립한 이기심성론을 토대로 각각 그들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한편 현실대응 방향을 설정했다. 퇴계학파를 비롯한 남명학파, 율곡학파가 학풍상의 차이뿐만 아니라 출처관(出處觀)이나 정치운영론에 있어 차별적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은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사림의 세계관 형성과 관련한 이기심성론은 이(理)의 작용성 여부와 아(理)·기(氣)의 관련성 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퇴계는 사단(四端)·칠정(七情)을 '이발(理發)', '기발(氣發)'로 분개(分開)하는 남명의 관점에 동의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사단을 '이발기수(理發氣隨)', 칠정(七情)을 '기발이승(氣發理乘)'이라 하여 상호 따르고 올라 탄 혼륜(渾淪)의 관계로 보았다. 조식의 분대론과 이황의 수승론은 남명학파와 퇴계학파의 차별적 성향을 반영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기는 했지만, 도덕적 가치의 절대성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사림세력의 이러한 시각차가 결과적으로 선조대 이래 그들이 학파를 매개로 붕당체제를 구축한 가운데 상호 대립하게 되는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척신정치의 잔재청산과 척신의 정치개입에 대한 견해차가 대두한 것을 계기로 그들 학파의 세계관에 입각한 정치질서의 수립을 위해 붕당체제를 구축한 가운데 상호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이황의 학통을 계승하는 퇴계학파는 척신정치의 청산을 통한 도덕적 사회구현이라는 점에 남명학파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퇴계학파가 수승론을 근간으로 동·서인 가운데 군자를 발탁하여 공존과 견제를 지향하는 조제탕평론(調劑蕩平論)을 제시한 것을 계기로 남명학파와 결별하여 남인(南人)·북인(北人)으로 분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퇴계학파에 의해 제시된 조제탕평론(調劑蕩平論)은 이분법적 논리로 상대당을 용납하지 않는 남명학파의 군자소인론이 갖는 배타성과, 화합을 명분으로 모순된 현실과의 타협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율곡학파의 보합론이 지닌 이중성의 한계를 동시에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그것은 상대당의 존재가치를 보장하면서도 시비(是非)의 분별을 통해 군자로 인정된 인물을 선별하여 발탁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붕당의 대립과정에서 초래될 수 있는 당화(黨禍)를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세력의 독주를 막고 합리적 방법으로 도덕적 가치가 지배하는 정치·사회구조를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황(李滉)의 이기수승론(理氣隨乘論)의 세계관에 연원하는 퇴계학(退溪學)의 명실상부한 역사적 위상이 찾아진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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