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스-(2)아들수 산군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지구촌의 오지 카프카스 탐사대는 러시아 모스크바를 거쳐 엘브루즈 등반기점인 테르스콜(Terskol)에 도착했다.'카프카스의 샤모니'로 불리는 해발 2,130m의 테르스콜은 정부가 운영하는 대형 호텔과 소형 개인 호텔, 전통 양고기요리인 샤슬릭(shashlik)을 파는 식당과 카페를 비롯 우체국, 소방서 등이 있는 관광촌이었다.
테르스콜에는 커다란 대포가 반대편 산중턱을 향해 놓여 있었다. 인위적으로 눈을 쏟아내려 더 큰 눈사태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사용되는 것으로 이 부근에만 10문이 있다고 했다. 이 곳에서 아들수 계곡 탐사의 베이스 캠프로 이용되는 그린 호텔(Green Hotel)까지는 도보 트레킹구간. 수정같이 맑고 찬 지류들이 쏟아져 내리는 계곡 좌우의 사면에는 비키니 차림의 아름 다운 카프카스 여성들이 옹기종기 앉아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테르스콜의 도로에서든, 모스크바 호숫가에서든 수영복만 입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한 달 반도 안되는 짧은 여름동안 햇빛을 가능한 한 많이 받기 위해 그런 차림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1시간50분만에 해발 2,620m의 그린 호텔에 도착했다. 이 곳은 실제 호텔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싱그러운 초록이 물결치는, 대형 빙하호수 옆의 고산초원 캠프지를 부르는 이름이다. 볼쇼이 카프카스에는 5,000m급 봉우리 14개와 4,000m급 12개 등 등반성 높은 봉우리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엘브루즈와 우쉬바, 체겟봉을 제외하고는 한국인에 의해 등정된 봉우리가 없었다.
가이드와 상의 끝에 구마치(Gumachi:3,805m)와 처쳇(Chotchat:3,740m), 알프스의 마터호른을 닮은 잔투간(Dzhantugan:4,012m) 등 3개봉을 도전 대상으로 정했다.
7월 19일 새벽 5시40분 첫 대상 봉우리인 구마치를 향해 출발했다. "여러분이 성공하면 한국 초등이다. 최선을 다하되 안전에 주의하기를 바란다"는 단장의 당부를 되새기며 릿지와 설선이 만나는 2,820m지점을 지나 1시간만에 암설혼합지대에 도착, 이중화에 아이젠을 부착했다. 대원들의 체력이 천차만별인데다 첫 등반이어서 그런지 행렬이 길어지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 더욱이 햇발이 닿자마자 눈이 녹으면서 이중화 바닥에는 스노볼이 생겨 대원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오전 10시 3,340m지점의 4번째 눈언덕을 넘어 안부(3,600m)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는 잔투간 피크가 날카롭게 서 있고 릿지 건너편 암릉릿지와 설벽은 U자곡을 형성, 장관을 이뤘다. 50m의 암릉을 곡예하듯 타고 올라 정상에 다다른 것은 낮 12시30분. 통신.식량을 담당한 막내인 유승규(19)군은 등정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물 마시고 싶어요".
다음 목표는 처쳇봉. 7월 21일 오전 6시 베이스 캠프를 나서 모레인(빙하에 밀려 퇴적된 암석과 토사)과 청빙지대를 통과, 거대한 세락(serac:빙탑) 아래서 아이스 폴(ice fall:빙하지대에 나타나는 크레바스 밀집지대나 급사면)을 우회하기 위해 왼쪽 암석지대로 올라섰다. 끊임없이 돌이 흘러내리는 불안정한 비탈 여기 저기에서 "낙석!"을 외치는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나왔다. 돌틈 사이로 피어난 앙증맞은 꽃들이 황량함을 덜어주었다.
대형 크레바스를 끼고 반원으로 휜 폭 1m 남짓한 설사면을 오르니 정상을 향한 전망이 트였다. 그곳에선 모스크바에서 온 7명의 젊은이들이 로프를 깔고 오르고 있었다. 대원들을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러시아 산악인들의 등반장비는 우리의 70, 80년대 수준. 옷 색깔이나 신발, 안전벨트 등은 역사가 오래된 대학산악부 동아리실에 걸려있는 선배들의 빛바랜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피치를 오르는 동안 가벼운 눈사태가 발생, 눈더미가 대원들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70~80도 급경사를 피켈로 찍고 오르면서 '세상이 모두 수직으로 이뤄졌다면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때마침 까마귀 한 마리가 유유히 창공을 헤쳐갔다. 정상에는 작은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하산 할 때는 빙하수가 불어나 모레인지대를 관통하는 바람에 우회하느라 애를 먹었다.) 처쳇과 구마치 오른쪽에 자리잡은 잔투간은 탐사 대상 중 난이도가 가장 높아 보였다. 북벽 아래 모레인 지대를 지나거나 잔투간 패스(3,460m)를 거쳐 동릉을 타고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는데 최소 12시간은 잡아야했다. 7월 23일 새벽 2시간동안 눈평원을 거슬러 올라 암석지대 밑에 섰다. 이 구간은 낙석 통로여서 위에서 확보를 봐주며 한사람씩 자일을 잡고 올라야했다.
대원들이 모두 통과하는데는 40분이 걸렸다. 고원을 가로질러 첨봉 아래 3,500m 지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긴급 회의를 했다. 정상 릿지는 푸석푸석한 바위로 이뤄져 위험이 높은데다 시간도 오래 걸릴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결국 5명만 오르기로 했고 2시간35분만에 정상에 도달했다.(하산은 플래토를 거치지 않고 급경사의 사면을 현수하강했다. 등반 도중 3명이나 크레바스에 빠지는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14명의 대원들은 6박7일 동안 온갖 역경을 딛고 카프카스 3개봉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올랐다. 끈기와 협동,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정신의 승리였다.
글.사진=정후식기자 hschu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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