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삼성, '가을의 악몽' 재연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삼성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할때까지만 해도 삼성의 우승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삼성은 우승을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춰진 팀으로 보였다. 확실한 선발진과 양적으로 풍부한 투수진, 가장 짜임새를 갖춘 타선, 그리고 몰라보게 달라진 끈끈한 조직력과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의 「명장」김응룡 감독이 버틴 삼성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빨 빠진 사자였다.

그러면 삼성이 왜 또다시 「가을의 악몽」을 되풀이해야 했을까.

◇막판에 악재가 터졌다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불거진 에이스 갈베스와 안방지기 진갑용의 부상이 치명적이었다. 2승을 챙겨 우승을 담보해줄 것으로 믿었던 갈베스가 두 차례의 선발등판에서 1승은 커녕 모두 5회를 넘기지 못하며 무너졌고 이는 투수로테이션을 흐트려 마운드의 「도미노 붕괴」를 몰고 왔다. 반면 두산은 삼성보다 쳐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선발, 중간, 마무리가 확실하게 역할분담을 소화해 내 코칭스태프의 의도대로 경기를 꾸려 갈 수 있었다.

또 포수 진갑용이 부상 후유증으로 제몫을 못한 것도 실패의 요인. 김동수가 교대로 마스크를 썼지만 기대이하였다. 한국시리즈에 임박해서야 타격연습을 할 수 있었던 진갑용은 시즌 중에 보인 타선의 연결고리역과 안정된 수비로 상대를 압박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두산 포수 홍성흔은 MVP후보에 오를 정도로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팀의 분위기 메이커역을 톡톡히 해냈다.

◇코칭스태프도 안일했다

삼성은 벤치싸움에서도 밀렸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제대로 파악지 못한 것은 물론 용병술에서도 번번이 실패했다. 김응룡 감독은 뒤늦게 합류한 갈베스의 연습투구량이 절대부족이었다고 실토하면서도 시즌 중의 활약만을 믿고 개막전선발로 투입하는 무리수를 뒀다. 이에 대해 임창용도 5차전 승리후 『차라리 몸상태가 좋은 내가 개막전선발로 나갔다면 경기흐름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감독의 용병술도 실패작이 많았다. 4차전에서 한국시리즈사상 1이닝 최다타석인 15명의 두산 타자가 나갈 동안 같은 유형의 투수들만 투입, 경기흐름을 끊어 놓지 못한 것이나 4차전부터는 김현욱, 전병호 등 언더핸드나 좌완투수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이들이 앞선 경기에서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잇달아 열리는 7차전 승부에서 3~4명의 투수로는 1~2경기는 잡을 수 있어도 우승은 힘들다.

또 1,2차전에서 연거푸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를 3차전 선발로 내세우거나 4차전에서 마무리 김진웅을 3회에 올린 용병술도 김감독 답지 못했다.

◇「야생사자」가 없었다

삼성이 또다시 한국시리즈와의 악연을 떨치지 못한 것은 「승부사적 근성」 부족도 크게 작용했다. 단기전은 분위기싸움이다. 위기나 찬스에서 얼마나 강한 승부근성을 발휘해 상대의 기를 꺾느냐에 따라 경기흐름이 확연히 달라진다.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치렀고 포스트시즌 경험이 많은 두산 선수들은 팬들의 함성을 유도하는 제스츄어까지 취해가며 경기흐름을 탄데 반해 삼성은 두산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에 주눅이 들었다.

위기때 마운드에 오른 이용훈, 전병호, 김진웅 등 「큰 무대」경험이 적은 투수들은 대관중 앞에서 공을 제대로 뿌리지 못했고 4번 마해영의 부진, 3루수 김한수의 잦은 실책도 악재로 작용했다.

이춘수기자 zapper@imaeil.com

잠실하늘에 축포가 터지는 순간 일제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기나긴 침묵속으로 빨려들었다.

모두 「파란피」가 흐르는 선수였고, 코치였고, 프런트 직원이었다. 한결같이 20년을 삭여온 간절한 염원을 또다시 가슴에 차곡차곡 쓸어담고 있었다.

이들을 뒤로 하고 김응룡 감독이 고개를 숙인채 총총히 사라졌다. 한국시리즈 「불패신화」와 함께.

그는 삼성이 부대껴온 「가을악몽」의 무게가 버거운지, 아니면 내일을 기약함인지 뜻모를 「내탓이오」만을 남기며 구단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순간 더그 아웃 한 곳에서 「승리 아니면 죽음」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모자챙을 만지작 거리며 허공을 응시하는 선수가 있었다. 이승엽. 끝내 그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그렇게 원하던 우승이었는데…』.

한국시리즈 무대에 서보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는 배영수. 그도 개인적 소망은 이뤘지만 선배들이 침묵하는 의미를 알기에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삼성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기 위해 「우승청부사」김응룡 감독과 갈베스, 마르티네스, 마해영 등 좋은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절치부심했지만 또 좌절하고 말았다.

7번째의 한국시리즈 도전에서도 징크스를 깨지 못한 삼성. 삼성이 진정 「저주」를 받은 것일까.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꿈이 깨지던 시각, 인터넷 게시판은 삼성을 비난하거나 격려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쏟아졌다. 이는 시즌 내내 대구구장을 달구고 그 열기를 잠실벌까지 이어갔던 삼성 야구팬들 못지 않은 시민들의 애정표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야구는 계속된다. 삼성이 파란 유니폼을 벗지 않는 한 그들의 도전도 계속될 것이다.

이춘수기자 zapper@imaeil.com

「웅담포」를 앞세운 두산이 6년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두산은 2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타이론 우즈가 장외 2점홈런을 쏘아올리는 등 삼성과 치열한 접전끝에 8회말 심재학의 희생플라이로 결승점을 뽑아 6대5로 승리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두산은 시리즈 전적 4승2패를 기록, 82년과 95년에 이어 통산 3번째 우승컵을 안았다.

포스트시즌 사상 준PO와 PO를 거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팀은 92년 롯데에 이어 두산이 두번째다.

6차전에서 장외홈런을 치는 등 6경기에서 23타수 9안타로 타율 0.391, 4홈런, 8타점을 기록한 우즈는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로 뽑혀 1천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우즈는 98년 정규시즌 MVP, 2001년 올스타전 MVP에 이어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MVP「트리플 크라운」을 이룩한 선수가 됐다.

82년 OB(두산 전신)와의 한국시리즈 패배 이후 삼성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은 「우승 후보」 딱지가 지겹도록 따라다녔다.

84년 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선착한 삼성은 82년 한국시리즈에서 패했던 OB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막기 위해 후기리그 최종 2게임에서 롯데에 「져주기」의혹까지 받으며 OB를 2위로 밀어내고 롯데를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택했다.

그러나 삼성은 최동원에게 4경기를 내주며 3승4패로 무릎을 꿇었고 구단 이미지에도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이후 삼성의 한국시리즈 불운은 심상치 않은 징크스로 바뀌기 시작했다. 최고승률로 한국시리즈에 오른 86년과 87년에는 현재 사령탑인 김응용 감독이 이끄는 해태(기아 전신)에 연신 발목을 잡혔다.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의 방망이와 김시진, 권영호가 지키는 마운드 등 전력상으로는 전혀 밀릴게 없어 보이던 삼성은 86년에 1승4패, 87년에 4연패를 당하며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이후 삼성은 90년 4위로 포스트시즌에 턱걸이한 뒤 빙그레와 해태를 연파하며 LG와 한국시리즈에서 만났으나 4연패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해태와 다시 맞붙은 93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4차전까지 2승1무1패로 앞서 첫 우승을 이루는듯 했으나 잠실로 옮겨 열린 5.6.7차전에서 삼성은 선동열이 버틴 해태 마운드의 벽을 넘지 못하고 3연패로 시리즈를 내줬다.

이후 한국시리즈에 명함을 내밀지 못했던 삼성은 8년이 지나 올해 다시 우승에 도전했지만 한 번 발목을 잡은 징크스는 삼성을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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