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開化期) 이후 우리나라의 학교는 외국의 선교사들이 설립한 종교계의 사학(私學), 민족지사들이 세운 사학, 우리 정부와 일제에 의해 문을 연 관·공립계 학교, 실업학교로 나뉜다. 이 가운데 민족지사들이 세운 학교는 3·1운동 후 민족적 자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다. 민족정신을 함양하고 실력을 배양해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는 데는 교육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인식이 새 교육 운동을 불렀으며, 민족지사들이 사학 설립과 교육 운동에 참여하게 했다.
▲1921년 9월 15일 대구 북성로에서 문을 연 교남학원(嶠南學院)은 민족지사들이 세운 사학이었다. 3·1운동에 가담해 복역했던 홍주일(洪宙一) 김영서(金永瑞) 선생이 정운기(鄭雲騏) 선생과 뜻을 모아 우여곡절 끝에 이 학교를 설립했다. 일제와의 여러 차례 마찰 끝에 정운기 선생을 설립자로 인가를 받았으며, 교사(校舍)는 근대 민족 정기의 원천지요 신문화의 요람이었던 우현서루(友弦書樓)였다.
▲조선인 교육을 위한 조선인 학교로 어렵게 걸음마를 시작한 교남학원은 순수 민족정신과 민족의식의 토대 위에 애국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이념과 목표였다. 우리의 역사가 1910년 한·일합방에서 1945년 민족 해방까지 대일 항쟁사였음과 같이 이 학교는 설립에서 일제 말까지 형극의 길을 걸으면서 민족 교육을 하는 민족의 학교였음을 말해 준다. 더구나 이 같은 교육 이념의 구현이 이 학교의 전통과 교풍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해 보인다.
▲교남학원은 남산동(1924)→수성동(1942) 시대를 거쳐 1989년 현재의 만촌동으로 옮겨졌으며, 교명도 교남학교→대륜(大倫)학교→대륜중→대륜중·고→대륜중/대륜고로 바뀌면서 발전을 거듭, 올해 개교 80주년을 맞았다. 그 동안 민족시인 이상화(李相和) 작시의 교가처럼 그야말로 '삼천리 골곳에 샛별'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지금까지 졸업생 총수가 4만8천847명(중 2만2천870명, 고 2만5천977명)에 이른다.
▲이 학교 교단을 거친 인물은 한익동 서동진 이효상 이상태 권중휘 이상화 주병환 김사엽 이규동 신현길 손계술 등이며, 배출한 인재는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시인인 이육사 등 이루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최근 출간된 '대륜80년사'는 바로 향토의 역사와 다를 바 없다는 느낌마저 준다. 이 학교 출신으로 전 대구대 총장이었던 조기섭(曺己燮) 시인이 노래하고 있듯이 언제나 변함없이 '맑은 별 하나 찾아 헤매는/예지의 눈빛으로/깨어 있'고, 크게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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