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최종예선 E조에서 1위를 차지,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90년대 이후 기량이 급성장하고 있는 아프리카 축구의 신흥 강호다.
인종차별로 지난 64년 이후 28년간 고립됐다가 92년 국제축구무대에 복귀해 2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권을 따냈다. 지난해에는 독일과 2006년 월드컵 유치경쟁을 벌여 지구촌의 주목을 받았다.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 96년 카메룬과 나이지리아를 따돌리며 우승하고 98년 준우승한데 이어 2000년 3위에 오르는 등 아프리카에서는 정상권이다.
남아공은 이번 월드컵 예선 8경기에서 7승1무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해 본선에서도 16강 진출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본선진출을 확정지은 부르키나파소전에서 1대1로 비겼지만 이전까지 6연승 행진했다.
최종예선을 앞두고 카를로스 퀘이로즈(포르투갈) 감독이 영입됐고 예선 8게임동안 모두 38명이 출전했다. 이 중 프랑스월드컵 출전멤버는 12명.
대표팀은 프랑스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들과 유럽의 명문 클럽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신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당시에는 수비수 피시 등 백인스타가 많았지만 이제는 흑인스타가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필레몬 마싱가와 숀 바틀레트, 베네딕트 매카시 등 흑인 트리오가 골게터로 활약하고 있다. 유럽 12개국에서 활동하는 30여명의 선수들도 거의 흑인이다.
백인선수는 골키퍼 봉크 등 소수이지만 흑인들과 잘 융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남아공은 선수들의 기량면에서는 세계수준에 근접하지만 해외 진출로 조직력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으며 비아프리카권 국가들과의 실전경험이 적다는 것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월드컵 도전사=1892년 아프리카 최초로 축구협회를 창립, 지난 52년 FIFA에 가입했으나 인종차별정책으로 64년 축출당했다. 인종차별정책의 폐지로 92년 FIFA에 재가입한 후 월드컵에 도전했다.
94 월드컵 지역 예선에 처음 출전했으나 1차예선서 2승1무1패를 기록, 1위를 차지한 나이지리아에 밀렸다.
98 월드컵에서는 최종예선을 3조 1위(4승1무1패)로 통과, 첫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일본 대표팀 감독인 필립 트루시에가 지휘봉을 잡은 본선에서는 프랑스에 0대3으로 졌고 덴마크, 사우디아라비아와 각각 1대1, 2대2로 비겨 2무1패로 1회전 탈락했다.
김교성기자 kgs@imaeil.com
2002 월드컵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돌풍을 예고하고 있는 흑인 트리오 베네딕트 매카시(24)-숀 바틀레트(29)-필레몬 마싱가(32).
최전방 공격수인 이들은 화려한 골사냥으로 남아공의 첫 16강 진출을 꿈꾸고 있다. 182cm, 76kg의 매카시(스페인 프리메라 리그의 셀타 비고)는 스피드가 뛰어나고 골문 앞에서의 몸놀림이 위협적이다. 개인기와 기회를 잡으면 놓치지 않는 승부사적 기질도 갖추고 있다.
최종예선에서 4경기 출장, 1골을 기록하는데 그쳤지만 상대 수비수들을 몰고 다녀 팀 동료들에게 많은 골 기회를 제공했다.
매카시는 일찍 기량을 인정받아 20세에 국가대표로 선발돼 97년 6월 네덜란드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프랑스월드컵에도 출전했다.
97년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 7골을 터뜨리며 이집트의 호삼 하산과 공동득점왕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그해 모로코에서 열린 20세 이하 아프리카선수권에서 5골로 득점왕이 되면서 단숨에 기대주로 떠올랐다. 남아공 2부리그의 세븐스타스에서 뛰던 매카시는 이때의 활약으로 네덜란드의 명문 아약스 암스테르담으로 무대를 옮겼고 97~98, 98~99 두 시즌 동안 35경기에서 20골을 잡아내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여 셀타 비고에 스카우트됐다.
바틀레트(잉글랜드 찰턴 어슬레틱)는 남아공선수로는 국제경기 경험이 풍부하다. 프랑스월드컵 사우디전에서 2골을 넣었고 2000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는 5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이번 아프리카 예선에서는 팀내 최다인 4골을 기록.
95년 국가대표로 데뷔, 통산 55차례의 A매치에서 23골을 기록, 남아공에서 간판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마싱가는 남아공 축구를 한단계 끌어올린「백전노장」이다. 부상과 나이 탓에 대표팀의 중요한 고비 때만 경기에 나서지만 팀의 기둥이다.
97년부터 이탈리아 바리에서 활약하며 세계적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98-99시즌 11골을 기록하며 팀의 주득점원으로 자리잡았다.
「플루크골(Fluke Goal)」은 낚시 바늘의 갈고리마냥 볼의 방향이 급격히 휘어져 골인되는 것으로 국내에서「바나나킥」으로 불린다.
월드컵에서 첫 플루크골은 1934년 이탈리아월드컵 이탈리아-체코슬로바키아의 결승전에서 나왔다. 이탈리아는 후반 종료 8분전까지 0대1로 뒤져 패색이 짙었으나 라이문도 오르시의 플루크골에 힘입어 기사회생했다.
오르시는 체코 수비진을 헤집고 오른쪽 골라인을 치고 들어가 왼발로 차는 척 하다가 오른발로 골지역 중앙으로 강하게 볼을 찼다. 그의 발을 떠난 볼은 똑바로 날아가다 미친듯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골네트에 꽂혔다.
결국 이탈리아는 연장전으로 승부를 몰고 가 2대1로 승리, 홈 관중들을 열광케 했다. 오르시는 다음날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똑같은 장면을 20여차례 연출했지만 볼은 골대 쪽으로 휘지 않고 똑바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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