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5월 일본군 제56사단(일명 용(龍)사단)은 이미 점령해 있던 버마(지금의 미얀마)에서 중국 윈난성(雲南省)을 침공, 망시(芒市)와 룽링(龍陵), 텅충(騰沖)을 차례로 점령했다. 미국으로부터 신식무기를 보급받은 중국 원정군은 44년 5월, 10만 대군으로 반격하여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며 그들을 제압하기시작했다. 그해 9월 7일 라멍(拉孟)에서, 그리고 일주일 뒤엔 텅충에서 일본군의 마지막 수비대가 전멸당했다.
이 과정에서 최전선으로 마지막까지 부대와 함께 이동했던 군위안부들도 군기밀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한 군인들에 의해 살해되거나 자결을 강요당해 비참하게 죽은 경우가 많았다. 이번 조사의 첫째 목적은 당시 군위안소에 있었던 수많은 조선인 위안부들 가운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생존자를 찾는 일이었다. 또한 당시의 중국인 목격자를 찾아 증언을 듣거나 당시의 상황을 알려줄 수 있는 자료를 찾는 일, 그리고 책이나 증언에서 언급된 장소를 확인하는 작업도병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윈난 지역 현지조사는 이번이 국내에선 처음이어서 조사팀은 걱정반 기대반으로 지난달 28일 오후 쿤밍(昆明)행 비행기를 탔다. 다행히 우리일행(한국정신대연구소의 강정숙 연구원과 일본 도쿄에서 날아와 쿤밍에서 합류하기로 한 재일동포 르포작가 김영씨, 그리고 필자)을 안내해 줄 현지 연구자를만나 큰 힘이 됐다. 바오샨(保山)에 사는 전직의사이자 항일전쟁에 관한 윈난 지역의 조사연구자로 더 유명한 천주량(陳祖樑, 眞西抗日戰爭遺留問題硏究會고문)선생이다.
30일 아침,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우리는 바오샨에서 7인승 승합차로 천 선생과 함께 라멍으로 향했다. 시내를 벗어난 뒤 까오리꿍샨(高黎貢山)끝자락의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좁은 산길을 오르내리기를 두시간, 차에서 잠시 내리자 비안개사이로 중국인들이 '분노의 강'이라고 부르는 누(怒) 강이 보였다. 이 강을 건너기 위해 통과해야만 했던 당시의 다리(惠通橋)를 지키기 위해 중.일 양측 격전을 벌여 엄청난 인민들이 죽었다고 한다. 다시 산길을 돌아 한참을 가다 도착한 곳이 따야커(大土亞尸)로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었는데, 일본군 부대의 진지와 위생대와 함께 건물 두 동(棟)짜리 큰 위안소가 있었던곳이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은 옥수수밭으로 변해 있었지만, 위안소터였음을 알리는 이끼 낀 비석이 지나간 역사를 말해 주고 있었다. 이곳은또한 작년 12월 도쿄에서 열렸던 여성전범법정에 증인으로 나왔던 북한의 박영심(80) 할머니가 44년 9월 3일 라멍에서 포로가 될 당시 있었던 위안소로추정되는 곳이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진중 만삭의 몸으로 힘겹게 바위 위에 몸을 기대고 있던 사진 속의 주인공인 박 할머니는 당시 다른 조선인 위안부 3명과 함께 포로가 됐을 때 임신으로 인한 하혈을 하고 있었으며 원정군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아기는 사산했다고 한다. 박 할머니는 200명쯤으로 추산되는 이 지역의 조선인 위안부 가운데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생존자이다.
안이정선(한국정신대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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