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재해교수가 새로 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훌륭한 집나무를 구해서 솜씨 좋게 재목을 잘 다듬었다고 해서 번듯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집터도 잘 잡아야 하고 잡은 집터를 단단하게 다진 뒤에 주춧돌을 반듯하게 놓는 일도 빠뜨릴 수 없다. 그리고 집 지을 구상에 따라 설계를 하고 그에 맞추어 재목도 적재적소에 잘 써서 든든하고 쓸모 있는 집을 만들어야 한다. 대들보를 얹는 상량식을 하면서 이웃사람들을 두루 초대한 가운데 성주를 모시는 제의를 올리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만 집이 온전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염두에 두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고 보면 새 집 한 채를일구어낸다는 것이 정말 예삿일이 아니다.

그러나 집은 하나의 구조물일 뿐이다. 정작 집을 일구는 것은 사람이다. 집을 잘 짓기는 쉬워도 가정을 잘 꾸리기는 여간 힘들지 않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화목해야 하며 자손들도 번성해야 한다. 따라서 집을 짓고 성주신을 모시며 기도를 올리는 까닭도 결국 건물로서 번듯한 집을 가지고자 하는 데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을 둥지 삼아 가족들이 편안하고 복된 삶을 누리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데 있는 것이다. 정당을 만들고 집권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정당을 크게 만들고 당권을 장악하더라도 국민들의 삶과 함께하지 않고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성주풀이의 집터 잡는 대목부터 보자.어떤 명당을 골랐는가

고이공지 명당터 안에

신당터에 터를 골라

그 집 명당에 니린 터전

나리 명당에 버리 터전

자손 본이가 비쳤으니

자손 번성도 하려니와

노적봉이 비쳤으니

거부장자도 날 자리요

안동 조상칠 할아버지의 성주풀이이다. 집터를 고르는데 어떤 터를 골랐는가 하면 명당 안에 있는 신당(神堂) 터를 골랐다고 한다. 그러니 이 터가 예사 명당이 아니다. '나리 명당에 버리 터전'이라고 한다. 하늘에서 점지한 명당이자 '벌이 터전'이다. 벌은 제각기 나가서 부지런히 꿀을 따오는 동물이다. 따라서 벌통 형국에 묘지를 쓰면 곧장 살림이 불어난다고 한다. 벌이 꿀을 물어오듯 각처에서 살림이 들어오는 까닭이다. 집터를 자세히 보니 자손이 번성할 자리요, 노적봉이 비친 것으로 보아서 부자가 될 자리이다.사람이 나고 살림이 일면 이보다 더 좋은 집터가 또 어디 있을까. 명당을 잡았으니 이제 집을 지을 차례이다. 와가 백 칸을 지을 적에

오행으로 주추 박고

인의예지는 기둥 서워

팔조목에 고루 얹고

삼강령 대강 얹어

안채는 목숨 수자요

바깥채는 복 복자요

행랑채는 창성 창자

수복창령에 집을 지워

천년 기와 만년 우피

명당을 잡아 집터를 다지고 드디어 집을 짓기 시작한다. 와가 백칸을 짓는다고 하는데, 궁궐만 백칸 이상을 지을 수 있었을 뿐 세간에서는 최대한 아흔 아홉칸만 지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이 집은 궁궐을 짓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요한 것은 집의 규모가 아니라 집을 짓는 이치이다. 주추는 집의 초석이다. 오행(五行)에 맞추어 주춧돌을 놓고 기둥은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세운다. 인의예지는 인간의 기본 도리이다. 기둥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팔조목(八條目)으로 기둥 위에 도리를 고루 얹고 삼강령(三綱領)으로 대들보를 얹어 기본이 반듯한 집을 짓겠다는 것이다.

집을 번듯하게 짓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가치들이 실현되는 반듯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크고 튼튼한 집의 설계보다 도덕적이고 건강한 가정의 구상이 바로 진정한 집짓기의 목표인 셈이다. 따라서 집의 각 채마다 갈무리하고 있는 뜻도 대단하다. 안채는 목숨 수(壽)자로 수명을 누리고 바깥채는 복 복(福)자로 행복을 추구하며,행랑채는 창성 창(昌)자로 살림살이의 번성을 기원한다. 채에 따라 서로 다른 복록을 기원하여 수복창성의 조화를 이룬다. 사모에다 핑거렁 달아

동남풍이 걷어가니

핑거렁 소리가 찬란하다

이 집에 쥔 양반

먼데 출입을 하시거던

먼데 살로 막아주고

관청출입을 하시거덩

관청 살로 막아주고

들에 니러 요왕 살

집안에 들러 집안 살

산에 올라 산신 살

선산 사는 최용보 할아버지 소리이다. 집을 다 지은 뒤에 추녀의 네 모서리에 풍경을 달아서 동남풍이 불 때마다 찬란한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다. 집의 장식까지 다 마쳤으니, 이제는 집안 식구들을 축수할 차례이다. 집의 주인 양반은 곧 집의 가장이자 성주신이 지켜주는 집의 대주이다. 먼 곳을 출입하더라도 해당되는 살로 막아주고 지켜달라는 축원이다. 관청에 가면 관청 살이, 들에 가면 용왕 살이, 산에 오르면 산신 살이 제각기 대주를 보호해 달라는 뜻이다. 소쿠리 명당에 집을 지어

아들이 나면 효자 낳고

딸이 나며는 열녀로다

소가 나며는 황소를 낳고

말이 나며는 용마 낳고

개가 나며는 청쌉사리

닭이 나며는 황계 장닭

해남 사는 정정순 할머니 소리이다. 소쿠리 명당에 집을 지었으니, 아들이 나면 효자가 나고 딸이 나면 열녀가 날 뿐 아니라, 소는 황소, 말은 용마, 개는 청쌉사리, 닭은 황계(黃鷄)가 나길 축수한다. 사람도 효자 열녀와 같은 도덕적 인간을 바라며 우마와 같은 가축에 대해서조차 그 씨의 정통성을 헤아릴 뿐 양적 풍요를 추구하지 않는다. 집안이제대로 꾸려지려면 가정을 이루는 성원들이 바르고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여당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로 당을 새로 꾸리고 있는 중이다. 마치 새 집을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자면 정당의 이념부터 당의 주추를 놓듯 오행에 맞게 설정하고 정강정책도 당의 기둥을 세우듯 인의예지에 맞게 바로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당직 인선 또한 삼강령 팔조목에 따라 도리를 얹고 대들보를 올려놓듯이 당을 이끌어 갈 인재들을 적재적소에등용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당은 재창당이니 쇄신이니 하는 주장은 보여도 그러한 창조적 구상과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당내 민주화는 오리무중인 채 대선 후보자들의이해관계에 따른 입김만 무성하다. 기껏 누가 대선후보가 되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샅바 싸움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말이 샅바싸움이지 사실 권력다툼이 아닌가.

건강한 가정을 꾸리는 데에는 집의 모양새나 크기가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문제이듯이, 정당도 규모나 이름보다 그 성원들이 문제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인적 쇄신이 긴요하다. 우선 군부정권의 잔재들이 정권교체와 함께 입당하여 여당의 요직에 앉아 기득권을 누린 사람들부터 청산해야 한다. 권력에 줄대기하며 집권당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끼고 앉아 한 지붕 두 가족인 채로 당을 제대로 쇄신할 수 없다. 그리고 정당의 이념에서 정강정책에 이르기까지 당의 근본을 다시 세우지 않으면 재창당은커녕 쇄신도 한갓 위선일 따름이다. 국민들의 관심은 여당이 국민들과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 하는 데 쏠려 있다. 그것이 바로 당의 이념과 정강으로 드러나야 한다. 민심을 외면한 탓으로 당의 기둥뿌리가 흔들리게 되었는데, 여전히 민심보다는 기득권 확보에 골몰하고 있다면 누구를 대선후보로 뽑든 희망이 없다. 민주당의 거듭나기에 기대를 거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